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066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조회수: 3,853 views

최영해崔暎海씨와 그 주변 1
—————————————————————————–
김광주·박인환·이진섭·유호·이해랑·유두연·,·윤용하·한노단·이봉구·김수영·김영주·이순재·
이명은·조경희·이인범·조애실·조영암·박연희·김양수·김성민·장만영·이경성·권영숙·
방용구·최완복·이석곤·이병일·한창우·오종식·박계주·최호진·서임수·김내성·정한숙·임인규
—————————————————————————–

동족상잔의 그 비참하던 한국전쟁이 휴전이 되고 1953년으로 접어들면서 서울 수복의 기미가 감돌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직장이었던 서울고등학교가 서울로 수복함에 따라서 서울로 올라왔다. 1953년 가을이라고 기억된다.
서울로 올라와 우선 놀란 건 울창한 플라타너스 가로수였다. 실로 하늘을 치솟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한 3년간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는 동안 그대로 야성적으로 무성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무성한 나무 가지가지에서 떨어져 뒹굴고 있던 낙엽들이었다. 노상에 떨어져서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고 하는 것이 무슨 짐승 같기도 했다. 그 무수한 플라타너스 낙엽들, 지금도 눈에 선하다. 영화 「제3의 사나이」의 라스트신 같은 풍경의 서울 거리였다. 이런 시가 나와버렸다.

바다 냄새에 젖은 바바리 외피를 걸치고
생명이 무성한 가로수
얕은 그늘 아래를 다시 걷는다

돈도 책도
이와 같은 모든 유산이 허물어진
재 속에
앙상한 몸뚱아리만 솟아 들고

바람이 차가워드는 거리
내 인생 수도의 거리
담배꽁추도 버리고 싶지 않은
아스팔트에
세월처럼 낙엽이 내린다
우수수 낙엽이 진다

오오……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나의 애인들이여

소공동 가는 언덕
낙엽이 우거진 그늘 밑을
……
서서히 걸으시오
죽엄은 가고, 인생은 남고,

ㅡ 「가로수」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먼저 올라와 있던 경향신문사 김광주 문화부장을 찾아서 소공동 언덕길을 가다가 나온 시상이다. 좀 미숙한 점도 있지만 그때 그대로의 나의 감정이었다. 실로 담배꽁초도 떨어뜨리면 안 되겠다는 나의 마음이었다. 그만큼 그립던 서울 한복판 길이 아니었던 가.
이렇게 서울 생활이 새로 시작되자 명동 일대에는 먼저 다방이 생기기 시작했다.
문예살롱·모나리사·돌체·갈채·보리수·피가로, 좀 나중에 동방문화살롱,
‘문예살롱’은 모윤숙(毛允淑) 시인이 소유하고 있던 문예빌딩 지하실에 있었다. 지금의 롯데쇼핑 센터 건너편 한전인가, 하버하버사진관인가 그 언저리였다. 한때 모윤숙 시인은 󰡔문예文藝󰡕라는 순문학지를 발간하고 있었다. 조연현·김동리·곽종원·박목월·박용구·홍구범(소설가, 행방불명)·최인욱·김윤성·오영수, 이런 분들이 그 주축 세력이었다. 그러니까 문인협회의 주력부대요, 이것은 다음 󰡔현대문학󰡕으로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 가족멤버들이다.
이 가족들은 ‘갈채’ 그리고 ‘명천옥’을 오고 가며 문학활동을 활발하게 행복하게, 많은 지면을 통해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나리사’이니, ‘피가로’이니, ‘보리수’이니, 좀 나중에 생긴 ‘동방문화살롱’을 거점으로 하던 문인·신문기자·예술인들은 각자, 각자, 외로운 단독자들로 그 많은 순결한 고독을 살았었다. 명동에서 그 많은 술집에서, 먼저 이야기한 술집들을 순례하면서.
이와는 좀 벗어나서 지금의 상업은행 본점 가까운 소공동에 ‘하루빙’이라는 다방이 있었다. 시인 장만영씨가 경영을 하고 있었다. 장만영씨는 나중에 충무로 입구 가까운 곳에 ‘비엔나’라는 이름의 다방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이곳에 나의 그림(유화 「윌미도」)도 걸려 있기도 해서 나는 하루에 한 번씩은 이곳에 들르곤 했다. 나의 그림은 물론 장만영 시인이 걸어놓은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정음사(正音社) 최영해(崔瑛海) 사장하고 인사를 나누었고, 좀 지나서 소설가 정비석씨와도 인사를 나누었고, 좀 지나서 송지영씨와도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이렇게 이 다방 ‘하루빙’은 장만영씨와 가까운 분들이 출입을 했다.

Translate »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