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065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조회수: 3,860 views

조지훈趙芝薰씨와 그 주변
—————————————————————————–
조지훈·왕학수·정한숙·황산덕·한태연·정비석·한창우·이관구·민재정·오종식·김광주·유호·
안의섭·박기원·김진찬·이한직·조영암·이하윤·이헌구·이명온·조경희·조애실·양주동·김광섭·
김환기·박연희·한노단·이봉구·이해랑·윤용하·이진섭·박인환·이인범·전봉초·김광수·김송·
박재삼·정한모·백철·이무영·한무숙·정종화·천상병·주요섭·김성한·전숙희·송지영·오영수·
조풍연·박계주·모윤숙·김동리·조연현·곽종원
—————————————————————————–

시상식은 다음해, 그러니까 1960년 1월 19일인가, 반도호텔 다이나스티 룸에서 성대히 있었다. 그 당시 서울엔 호텔이라곤 ‘조선호텔’과 이 ‘반도호텔’이 가장 톱 클라스의 호텔이었다. 반도호텔은 지금 롯데호텔 자리에 있었다. 아세아재단 대표는 제임스라는 사람이었고, 한국 인 대표는 석천 오종식 선생이었다. 수상은 오종식 선생이 했다. 수상자 대표로 오영수 소설가가 답사를 했다. 사회는 조풍연(趙豊衍)씨, 수상식이 끝나고 그 자리에서 호화스러운 리셉션 파티가 있었다. 나는 어머님을 아세아재단 책임자인 제임스씨에게 소개했다. 제임스씨는 어머님에게 “축하합니다.” 하고 손을 내밀었다. 어머님은 제임스씨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생전 처음 서양남자의 손을 잡아본 어머님, “얘야, 손참 크더라.” 하시면서 “이렇게 밖에 있는 사람들은 너를 좋아하는데 집 안에선 너를 칭찬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하시는 게 아닌가. 어머님은 이러한 상이 좋아하기 때문에 주는 거라 생각하셨고, 항상 집 안에서 쓸쓸히 지내는 나를 가슴 아프게 생각하시고 계셨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보니 어머님 눈엔 나의 가정이 항상 그렇게 쓸쓸히 보였던 거다. 미안하고 죄송하기 짝이 없던 일이지만 나는 나를 지키고, 나를 정확히 살기 위해서 그렇게 혼자를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후 다시 날짜를 잡아서 자축연을 벌였다. 종로 다옥동 골목에 있던 ‘호수 그릴’에서, 참으로 많은 분들이 와서 축하를 해주었다. 특히 화가 김환기씨가 인상적이었다. 술 취한 작업복 차림의 김환기씨의 모습은 그대로 천진난만한 예술가 그대로였다. 그날 밤에 어머님께서도 기분좋게 술을 마시고 계셨다. 그때 어머님 연세가 79세. 이러한 연회석상에 자주 얼굴을 내지 않는 소설가 박계주(朴啓周)씨도 나타났다. 일제시대부터 「순애보」로 유명했던 그는 상당한 미남이었다. 차 한잔도 사지 않는 함경도 오만한 사나이로 사람들은 그를 싫어했지만 그는 나를 좋아해서 나도 그를 좋아했다. 그는 늘 말쑥한 곤색 양복을 입고 다녔다. 한국문인협회에서 한국자유문학자협회로 갈라져 나갈 때 그 핵심 멤버의 한 사람이었다. 이무영·박계주를 비롯해서 이헌구·김광섭 ·모윤숙·이하윤 등, 주로 김동리·조연현·곽종원, 이러한 한국문단의 주류파에 반대하는 그룹들이었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는데 그 발기인 명단에 내 이름이 들어 있어서 김광주씨와 한참 웃은 일이 있었다.
미남자 박계주씨도 갔다(1913.7.26.~1966.4.7.). 나는 그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추도시를 하나 남겼다.

봄날 슬픔 속에
ㅡ 박계주 사백 영전에

1966년 4월 9일
오늘
당신이 세상을 등지고 떠난 지
오후의 햇빛 늦어서 찾아드니
서울을 아득히 눈 아래 내려다보는
미아리 턱
산 마루
구름 높이
마냥 누워 있구려
김광주
유호
이봉구
같이 향을 피우는 좁은 자리
남은 사람 울리고 있는
남은 사람 울리고 있는
정! 가득하오

「순애보殉愛譜」 「진리의 밤」
우러러 찾던 사랑의 별들
지금 모국어의 하늘
가득히 알알이 박히고
변하는 세월
개나리
엿장수의 가위질 같은
인정
던지고 돌아누운
당신의 자리
실로 영원한 것은 작별이구려

보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세상
걸쳐서, 마지막 손을 잡는
오늘
남은 서울은
한창 봄날이지요.

(제15시집 󰡔가을은 남은 거에󰡕에 수록)

Translate »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