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선을 배우면서
거리에서, 골목에서,
지하도에서,
손을 내미는 측은한 사람 보면
올해 들어부터 부쩍 어머님 생각
한 푼이고, 두 푼이고, 빠짐없이
동전을 집어 주고 지나시던 어머님 모습
불쌍도 하지,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적선을 하시던 먼 어머님 생각
나도 그렇게
적선을 배운다.
광화문 지하도 젖물리고 앉아 있는 여인
종로 지하철 입구
아이 잡아 매고 앉아 있는 눈 먼 여인
덕수궁 긴 담 모퉁이
장안의 먼지 다 쓰고
지장 보살처럼, 묵묵히
그저 묵묵히
세월을 마냥 앉아 있는 다리 없는 사나이
보이는 게 모두 눈물
느끼는 게 모두 눈물
생각 도는 게 모두 눈물
아, 나무아미타불
어머님!
어머님처럼 적선을 하며
적선을 배워도 배워도
모자라는 게 적선이옵니다.
詩想노트
어머님은 살아 계실 때, 늘 길에 있는 거지들에게 적선을 하시곤 하셨습니다. 나는 어려서 어머님을 잘 따라 다녔습니다. 그래서 어머님이 거지들에게 돈푼들을 던져주곤 하시는 것을 늘 보곤 했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그러니까 서울로 올라와서 미동국민학교에 다닐 때, 서대문 쪽에 있는 냉천동(그땐 냉동이라 했음)이라는 곳에 살았습니다. 냉동에서 시내로 들어오려면 지금의 법원(대법원) 앞을 지나는 정동 골목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 대법원 앞쪽, 덕수궁 긴 담엔 언제나 지장보살처럼 거지가 앉아서 먼지를 뽀얗게 맞고 있었습니다. 특히 봄이 오면 가련한 들꽃처럼 불쌍하게 보이곤 했습니다.
그 거지 앞을 지나갈 때마다 어머님은 그냥 지나가시질 않았었습니다. 그 거지도 어머님을 알아보곤 먼저 인사를 하곤 하셨습니다.
이런 식으로 어머님은 당신도 용돈이 그리 없으시면서도 꼭 돈을 주곤 하셨습니다. 적선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광경을 보고 자란 나는 어른이 되어서 나도 그러한 것이 습관이 되어서 거리의 거지 앞을 그냥 지나가질 못했습니다. 그냥 지나가면 어머님에게 무슨 죄나 저지르는 것 같기도 해서 꼭 몇 푼을 던져주곤 했었습니다.
먼 외국에 여행을 가서도 거지를 보면 그 앞을 외면하질 않고, 그 앞으로 가서 몇 푼씩을 던져주곤 했었습니다.
요즘은 그것이 내 습관처럼 되어서, 어머님에게 효도를 하는 생각으로 거지를 만나면 꼭 이 적선을 하곤 합니다.
한동안 서울에 거지가 없었습니다만 요즘엔 지하도 계단에 참으로 많은 거지들이 나타났습니다. 생활들이 그만큼 어려워진 것이겠지요. 참으로 불쌍한 풍경들입니다.
더구나 몸이 불구가 된 사람들에겐 더욱 동정이 가곤 합니다. 참으로 불쌍한 풍경,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가난은 나라의 상감도 어찌할 수 없다는 말도 있지만 가난처럼 처량한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