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838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유리의 성채👁️ 조회수: 4,513 views

100 유리의 성채
사진을 정리하며

어느 때부터인가
이곳 바람을 감지하고부턴
나는 웃음으로 나를 숨기는
지혜를 기르며 나를 살아온다

사람을 마주보는 것이 무서워
바로 쳐다보는 것이 멋쩍어
맹송맹송 바라다보는 것이 미안해
그냥 보는 것이 수줍어
선뜻 얼굴 맞대는 것이 쑥스러워

이렇게 본의 아니게 사는 것이
부끄러워

사람을 대할 때마다 깊숙이
나를 감추며, 숨기며
보이지 않게 나타나지 않게
투명한 웃음으로 나를 지켜 살아온다

때문에 오해로 번진 나의 생애
보이지 않는 나의 생존
남은 사진마다 웃음에 가려진 얼굴들이 아닌가

이곳 바람은 너무 어려워
웃음을 방패로 멀리 사는 나의 지혜

한여름 잠자리처럼
순결한 고독처럼.

시집 『외로운 혼자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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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5월 15일, 경성사범학교 시절 2년 선배(같은 육상경기부), 신창호(申昌浩) 사장이 경영하는 우일문화사에서 제30시집 『외로운 혼자들』을 출판했습니다.
신 선배는 나이 70이 넘어서 시를 쓰기 시작해서, 인생을 그림과 승마와 여행과 사업, 그리고 폭 넓게 인생을 깊게 즐겁게 사는 분이었습니다.
이러한 신 선배를 더 즐겁게 해 드리고 자주 만나기 위해서 나는 몇몇 친한 시인들을 모아서 ‘서울시인클럽(Seoul Poets Club)’을 하나 만들었던 겁니다. 신 선배는 영어, 불어를 위시해서 실로 외국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외국의 시인이 서울에 들르는 일이 있으면, 그들하고도 담소를 할 꿈을 가지고.
말하자면 좀더 국제적으로 시를 통해서 살려는 생각으로.
이렇게 해서 친숙한 신 사장이 시집을 내자고 해서 낸 것이 이 시집 『외로운 혼자들』입니다.
이 시는 그중에 끼어 있는 작품의 하나.
나는 늘 내면은 우울하고, 고독은 했지만, 사람들이 보는 외면에서는 늘 웃음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남까지 우울하게 할 필요가 없어서. 이렇게 나를 속으로 감추고, 항상 명랑하게 외부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자연 오해가 많았던 겁니다.
나 같은 우울하고 고독한 자에게 낙천주의자이니, 유복한 자이니, 천하 근심이 없는 자이니, 실로 엉뚱한 오해 가운데서 그 오해를 살아야 했던 겁니다.
내면 생활의 어둠, 그것을 완전히 이겨가면서 명랑한 외부 생활을 해 왔던 거지요.
투명한 유리성 안에 보이지 않게 나를 유폐시켜 놓고.
다시 말하면, 내부 생활은 나에게 충실히, 외부 생활은 되도록 명랑하게.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도록. 이렇게 긴 공적 생활을 하면서 나는 나에게 충실한 나의 인생, 그 숙명을 고독하게 자술해 왔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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