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이 시집 『해가 뜨고 해가 지고』(5象社. 1985.12.1.)를 출판할 무렵, 나는 인하대학교 문과대학장(1981~1983), 부총장(1983~1985)을 거쳐서 대학원 원장(1985~1986)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5상사(5象社)’에서 새로 시집을 출판하자고 해서, 나는 그 때까지 써 온 시들을 추려서, 그 무렵 여행을 하고 돌아온 주로 이태리 지방의 풍경 스케치를 곁들여서 내 육필을 그대로 사진판으로 하고, 주로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편리하게, 육필원고와 인쇄원고를 같이 병행해서 인쇄출판을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우수 페이지에는 주로 육필원고와 그림, 그리고 기수 페이지에는 그 육필원고를 정서해서 인쇄된 것을 실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 시집의 정식 명칭은 『조병화 육필시화집ㆍ해가 뜨고 해가 지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나의 제 29시집이 되는 것입니다. 제8차 세계시인대회에 참석했던 여행기록이 주가 되어 있습니다. 제8차 대회는 희랍 코르푸(Corfu)라는 작은 섬, 힐튼 호텔에서 1985년 9월말에 열렸습니다.
여기 이 스케치는 프랑스 파리 뿌랑땅인가 푸랑땅인가 하는 큰 백화점 옆 골목에서 하루의 끼니를 얻으려고 노상에서 음악 연주를 하고 있는 늙은 악사의 모습. 나는 수많은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스케치를 했지만, 웬일인지 이 그림에 특히 애착이 가서 아끼고, 보관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인생의 애수라 할까 생존의 적막이라고 할까. 이루 말할 수 없는 존재의 눈물이 이 그림에서는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가진 사람이나 갖지 못한 사람이나, 쫓는 사람이나 쫓기는 사람이나, 행복한 사람이나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나,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 눈물이 아닌 게 있으랴.
애수의 철학, 눈물의 철학, 적막의 철학, 언제부터인가 이것이 나에게는 큰 어쩔 수 없는 미학(美學)으로 느껴오곤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