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인간의 물이 들기 시작한다
1959년 7월 서독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열렸던 30차 국제 P.E.N 클럽 세계대회의 의제는 「과학시대에 있어서의 상상문학(想像文學)」이었다. 극도로 발달되고 되어가는 과학시대에 있어서의 문학의 위치를 다루는 회의였다.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거대한 시인 괴테의 고향이다.
이 회의에서 우리 한국 대표 주요섭 선생은 ‘•••••• 우리 한국 사람들은 벌써 몇 세기 전에 달 세계에 올라가 살고들 있었다. 고귀한 계수(桂樹) 나무를 은도끼, 금도끼로 깎아 다듬어서 초가산간의 집을 짓고, 혼자가 아니라 양친 부모를 모셔다 놓고 천년을, 만년을 살고자 살았던 것이다. •••••• 이것은 우리 한국의 동요에 나타나 있는 문학적 사실이다. ••••••’ 이렇게 주제를 발표하여 대 갈채를 받았었다.
서정의 인간들에겐 퍽 환상적이었고, 기한 이미지였었고, 어느 동경의 낭만이었으리라 생각되었다.
서구에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인간의 세계, 부모와 자식지간의 세계, 물질을 초월하고, 이해타산을 초월한 순수 인간의 정분의 세계가 아니었던가.
극도로 개인화 되고, 물질화 되고, 이해타산과 생존의 고독 속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향수애였던가.
달은 이렇게 우리 동양인들에게 특히 한국인들에게 정다운 이웃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또한 이러한 말을 기억한다. 뉴욕 쎈터에서 온 흑인 작가의 발표문 중의 한 토막.
“ •••••• 요 몇 십 년 전만 해도 우리 흑인 조상들은 넓고 넓은 미국대륙에 땀을 흘리며목화씨를 뿌리고, 또 그 목화송이들을 손수 땀을 흘리며 거둬들였다. 그리고 나무 그늘에서 슬픈 노래를 불렀었다. 그러나 오늘 날, 과학이 발달되고, 기계가 발달되어, 옛날 우리조상들이 손수 뿌리고, 거두고 했던 목화재배를 기계가 다 해주고 있다. 얼마나 편안하고편리한 세상이냐. 그러나 슬프게도, 참으로 슬프게도, 우리 조상들이 나무 그늘에서 슬프게슬프게 노래 부르던 그 슬픈 노래들은 들을 수가 없다 •••••• ”
이러한 말이 나오고, 그것이 계속 되면서 만장의 박수 소리 역시 그치지 않았다.
과학과 문학의 세계를 이렇게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는 말도 드물 거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어 심지어는 인공인간을 만들어 낸다 해도, 문학은 역시 인간 상호간의 정분의 세계를 왕래하는 인간의 정신의 작업이다.
제2의 창세기를 기원하는 아폴로호가 달을 향하여 위험하고 고독한 먼 여행을 하고 있다.
마침내 영원했던 신비, 영원했던 미지, 영원했던 침묵을 흔들려 하고 있는 거다.
드디어 인간의 지혜가 달세계까지 도달하는 거다.
계수나무도 없어지고, 방아를 찧는 토끼도 없어지고, 금도끼, 은도끼로 다듬어 정성스럽게 만들어 놓은 초가산간도 없어지고, 천년 만년을 수명하던 어린 천사들도 사라져 버리고, 오로지 황막한 마을 회색의 대륙이 아폴로를 기다리고 있을 밤, 문학은 더 더 먼곳으로 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중학교 시절만 해도 ‘종교와 과학’을 다루는 서적이 읽혀졌으며, 그것들이 진지하게 다루어졌었다. 그러나 오늘 날 우리 시대는 ‘문학과 과학’ 이렇게 그 초점의 좌표가 바꿔졌다. 1966년도 국제 P.E.N 클럽 뉴욕 대회에서도 그 주제가 「전자시대에 있어서의 문학」
이었다. 과학과 문학의 공존성을 새로이 모색하게 되었다.
과학은 무한한 신비를 적나라하게 하나하나 배일을 벗겨가고 있다. 상상과 환상의 세계를 사실과 현실의 세계로 바꿔가고 있다. 그것에 따라 우리 인간들의 상상과 환상도 또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가고 있다.
하여간 달은 우리 인간들의 소유가 되었다. 허망한 공간에 둥둥 떠도는 무숙의 침묵, 그 물체가 아니라 우리 인간들의 생활영역 속에 들어온 정분의 섬이 되었다. 마침내는 울릉도나 독도처럼.
장한 아폴로! 달은 인간의 물이 들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