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526호 금혼식👁️ 조회수: 5,251 views

오늘은 좀 부끄러운 나의 신상 이야길 전해 드리겠습니다.
1995년 9월 16일, 토요일, 오후 6시, 김삼주 교수 사회, 신라 호텔, 다이내스티 룸에서 우리 부부의 금혼식이라는 것을 아들 딸 사위들이 열어 주었습니다.
나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 행사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금혼식이 다른 나라에도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행복한 가정에서는 행복한 축하연이 자주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만, 나의 부부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미안해서 꺼림칙한 마음이 부끄러움과 함께 반성하게 되었던 겁니다.
어느 가정에서나 부부 싸움 한 번 없이 살아가는 가정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나의 경우, 두 사람이 다 정직하고, 고집이 강하고, 무엇보다도 자존심이 강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한 번 싸우면 오래오래 가기가 일쑤였습니다.
현실과 이상, 그것의 충돌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안사람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이고, 나는 철저한 이상주의자이고, 하니 이것이 그리 잘 합의될 리가 없었습니다.
물론 아내가 그렇게 철저한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에 가정이 이렇게 든든했고, 나는 나대로 나의 이러한 고독과 인내로 부지런히 작품을 통해서 이겨 나왔기 때문에 그 작품 양이 한없이 많아져서 오늘날의 이만한 자리에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고독을 현실로 열심히 이겨 나오고, 나는 이상으로 고독을 열심히 이겨 나왔기 때문에, 서로 싸우면서 이만한 혜화동 살림을 이루어 놓은 것 같아서, 한편 싸우면서도 잘도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시처럼.
그날은 억수 같은 비였습니다
꿈과 평화와 사랑으로 시작하려던
그 날의 나의 꿈은
투쟁과 오해와 고독과 비굴과 타협으로
얼룩지면서 오십 년,
긴 세월이 시의 부끄러운 바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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