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517호 개구리의 늦 사랑👁️ 조회수: 5,487 views

어제는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서른두 돌이 되는 기제사였습니다. 양력 1994년 7월 10일(일요일), 음력 6월 2일.
세월이 빠르다고는 하지만, 어머님 돌아가신 것이 어제만 같은데 벌써 서른두 해가 훅, 지나간 것입니다.
이번 제사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손녀(조성인 Pomona College 4학년), 손자(조성환, Stanford 대학 3학년)가 방학이라 귀국하여 참석하고, 누이(조병숙, 일흔일곱 살)도 마침 내려와 있어서 참석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제사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갈 사람들은 서울로 돌아들 가고 나는 모든 유리창을 활짝 열어 놓고 방안 마룻바닥에 누워 어머님을 생각하다가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늦은 개구리의 사랑

오늘은 1994년 7월 20일, 음력 6월 초이틀
어머님 돌아가셔서 서른두 돌 되는 제삿날

제사를 지내고
어머님이 오셨다 돌아가신 자리에 누워
창을 열고
있노라니
한때, 세상에 나와서 처음으로 사랑의 열이 올라
짝을 찾아서 목청껏 울어대던 개구리들도
짝들을
지어 열이 식고

아직도 짝을 못진
노총각 개구리들이 우는 낮은 울음소리
간간히 들려 오며
여름 밤은 한량없이 침전해 가고 있습니다.

내게도 한때, 그러한 일이 있었지, 할 때
멀리 당신 얼굴이 떠오르며, 어리어리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었습니다’하고.
존재라는 것이 이러한 것이 아닌가, 더 이상도 아니고 더 이하도 아니고, 그저 인생은 운명대로, 약속대로, 자연대로 진행되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신 생각은 어떠하신지 그럼 또. 항상 사랑하고 있습니다. (1994.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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