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511호 생명의 계절👁️ 조회수: 5,378 views

요즘, 참으로 좋은 계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 년 중 이렇게 좋은 계절이 또 있을까요.
요즘은 신(神)이 하늘에서 이 인간들이 살고 있는 지상(地上)으로 내려와 사는 것 같습니다.
꽃 피고, 잎 피고, 새 울고, 신록이 우거져 가며, 지금 이곳 농촌에서는 모내기에 농민들이 정신이 없습니다.
보이는 것이 모두 생명이며, 들리는 것이 모두 그 생명의 찬양이며, 코로 맞는 것이 모두 푸른 생명의 향기이옵니다. 이러한 생명의 계절에 한 번도 당신을 만나지 못하고 지낸다는 것이 섭섭할 뿐이옵니다. 서로 바쁘고 멀리 떨어져 있기에 그렇겠지요.
요즘 나는 특히 내자불거(來者不拒:오는 자를 거절하지 않고) 거자불추(去者不追:가는 자를 붙잡지 않는다)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일본 에도시대 말기(幕末) 쇼가손주꾸(松下村塾)라는 의숙(義塾)을 이끌어 오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이라는 지사(志士)의 말입니다.
이 의숙과 이 의숙을 이끌어 온 요시다 쇼인이 유명하게 된 것은, 이 서당에서 요시다 쇼인에게 배운 제자들이 모두 훌륭한 학자와 지사들이 되어 일본 근대화의 기폭점이 되는 명치유신(明治維新)의 주축이 되어 이것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왔기 때문이옵니다.
그러니까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德川時代)를 부수고 명치천황(明治天皇)을 옹립, 다시 천황제(天皇制)를 세웠던 거지요. 그 큰 중심 공신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교육계에 일생을 바친 사람이지만, 그런 대로 나를 생각해 주는 제자들이 있어서, 속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면서 일생을 더욱 나대로 나를 살기 위해서 요시다 쇼인이 말한 ‘來者不拒 去者不追’라는 정신으로 깨끗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말을 지저분하게, 특히 일본 이야길 했기 때문에 더욱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면서 인간(人間)이 지니고 있는 고독감(孤獨感)을 달래고 있습니다. 오늘도 밤이 소리없이 깊어 갔습니다. 안녕히 계시길 (1994.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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