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외 설경(窓外 雪景)
지금 창 밖에 서울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 년 이 년 삼 년 …… 십 년을 두고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묵은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지금 서울엔 창 밖에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한번 맘 먹고 새 옷 차림하고
누추한 서울을 찾아 내리다
…… 다시 한 번 주저한 듯이
주저하다 아주 마음먹은 듯이
망설이다……아주 마음 내린 듯이
서울에 창밖에 내 곁엔 눈이 와 앉고 있습니다
서울의 사랑은 눈 쌓인 창 안의 어설픈 보금자리
길이 막히어
가시나무 그늘에 멧새처럼
눈 내리는 눈 속에서 진종일을 종일합니다
창 밖에 찬 겨울 겨울을 견디는 사랑아
냉랭한 세월아
서로 미워하기 위하여
서로 싸우고 견디기 위하여 나온 것은 아닙니다
창 밖에 찬 겨울 겨울을 견디는 사랑아
냉랭한 세월아
그리운 것이 있어 그리워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것이 있어 사랑하기 위하여
“당신을 사랑하기 위하여 나온 것입니다”
지금 창 밖에 서울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묵은 편지가 쓰고 싶어지는
내 가슴 흐뭇이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창외 설경(窓外 雪景)」이라는 제목의 시, 1957년 11월에 출간한 내 제6시집 『서울』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제 머지않아 긴 겨울로 접어들어 눈이 많이 내리려니, 눈 내리는 고요한 날들처럼 세상이 정서적으로 흘러내리면 얼마나 좋으리.
그리움, 인간은 이 그리움을 사는 게 아닌가. 문학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도 이 그리움이었고, 문학을 한 4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 그리움이 아니었던가.
그리움으로 해가 시작하고 그리움으로 해가 진다. 한 해가 그리움으로 시작한 것이 그 그리움을 남기면서 해가 저물어 간다. 어린 시절도 그러했고, 자라서 청년 시절도 그러했고, 철들은 장년 시절도 그러했고 60을 넘은 지금 노년 시절도 그러한 걸 어찌 하리.
올해도 그 많은 꿈과 그리움, 그 소망으로 정월 정초를 시작한 것이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가도록 그 소망, 그 그리움이 다 풀리지 않으며 세월의 고개를 넘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아, 어수선한 연말이여. 신문을 들여다보면 우울한 세월의 물결, 올해도 이렇게 근심으로, 불안으로, 미지근한 미련의 꼬리로 저물어 간다.
『마침내 사랑이 그러하듯이』, ‘그리움을 남기며’ 부분, 도서출판 백상, 1988, pp 276 ~ 2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