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326호 세월👁️ 조회수: 6,378 views

세월 잊어야지
잊어야지
하면서, 잊어지지 않은 채
봄, 여름, 가을
올해도 어느덧 세월 갈리는
바람의 언덕
밀리며
밀리며
이 인간의 세계
쓸쓸한 건 그 저문 풍경이다

가진 사람이나
갖지 않은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은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나

동행하면서
동행하면서
이 혼자
이 혼자를 견디며
세월을 넘는다
잊어야지
잊어야지, 이 비밀
하면서.

지금 우리나라에선 어딜 가나 온 겨레들이 부지런히 살고자 하고 있다. 부지런히 살고들 있다. 보다 잘 살기 위해서 머리를 쓰고, 공부를 하고, 새로운 생각을 해 가면서 알뜰하게 알뜰하게 생활 설계를 꾸며 가고 있다. 농촌엘 가나, 어촌엘 가나, 어느 도시엘 가나, 두메 산골엘 가나 살고자 하는 열기가 서려 있다. 놀고 있는 곳이 없다. 놀고 있는 사람이 없다. 놀고 있는 도구들이 없다. 이렇게 지금 우리나라는 숨가쁘게 살고 있다.
이러한 속에서 하루가 어떻게 빨리 지나가는 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지도 모르게 하루가 지나가고 한 달이 지나가고, 봄, 여름, 가을, 일 년이 지나가고 있다. 실로 쫓으며 쫓기며 일하는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어느 의미에서 온 세상 사람들보다 더 많은 근심과 기원과 소망과 그 긴장을 살고 있다. 항상 가시지 않는 국가 안보에 관한 근심, 그 긴장 속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 자기 소망을 원하는 마음, 자기 꿈을 이루고자 끊임없는 기원과 노력 속에서 매일매일을 어느 기도 속에서 살고 있는 거다. 6.25의 무서운 동란을 겪은 그 공포가 항상 서려 한 구석에 남아 마음의 평온을 어지럽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긴장! 물론 우리 인간들은 어느 정도의 자기 나름대로의 긴장 속에서 누구나 살고 있는 거다. 그러나 우리 겨레들은 어느 정도의 자기 나름대로의 긴장이 아니라, 온 겨레의 공통적인 그 긴장 속에서 살고 있는 거다. 이 온 겨레의 공통적인 긴장을 슬기롭게 같이 살아 넘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더 큰 사랑을 배워 가야만 하겠다. 올해도 그렇게 살았지만.

– 「보다 큰 사랑을」부분,『내일로 가는 길에』, 영언문화사, 1987 pp 273 ~ 275

Translate »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