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32호 난 여기서(2월 12일)👁️ 조회수: 8,936 views

2008년 2월 12일 (제32호)

시(詩)에 관한 단상(斷想)
시인의 기쁨은 무엇보다도 진실한 독자가 많은 것, 그
뿐이다.

-조병화-

넌 거기서 난 여기서

너와 나는 지금 편지도 없고
전화도 없고
기별도 없는
이승과 저승 같은 거리를 두고

너는 거기서 나는 여기서
나날을 보낸다

가까운지 먼지 알 수 없는
아득한 곳에 아롱아롱

그저 아직 이승에 머물고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캄캄하다는 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이 시는 나의 인생관이며, 내가 그렇게 내 인생관대로 일관해서 살아온 나의 긴 생애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떨어져서 살고들 있는 겁니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 사이들이라도 떨어져 살고 있는 겁니다. 부부이면서 남남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좋은 부부일지라도 서로 이해가 달라져서 충돌이 있고, 싸움이 있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남편 마음 아내가 모르고, 아내 마음 남편이
모르는 수가 얼마든지 있어서 실로 부부이면서 남남으로 남남이면서 부부로 살아가는 겁니다.
하물며 남남끼리, 인간, 인간 끼리에 있어서야
그 사이는 천차만차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살게 마련인겁니다.
우리집 아이들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 곳에서 살고 있는 딸도 있습니다. 편지나 전화가 없을 때에는 실로 죽어서 이승과 저승에 서로 서로 떨어져서 살고 있는 느낌을 줄
때가 많습니다.
다만 다른 것은 아직 이승에 있다는 안도감뿐입니다. 이 안도감 때문에 언젠가는 같이 만나 보겠지 하는 한 가닥 희망이
있어서 우리들을 흐뭇하게 해주고 있는 겁니다.
간혹 전화나, 편지는 온다 해도 서로들 뿔뿔이 헤어져서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의 생활,
참으로 헤어져서 살아야 하는 그 거리는 실로 캄캄할뿐입니다.
한편 이렇게 떨어져 있는 곳에서 생각이 나오고, 그리움이 나오고, 시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 보는 겁니다.
사단법인 조병화시인기념사업회

(사)조병화시인기념사업회는 편운 조병화 시인의 순수 고독, 순수허무의 시세계와 예술철학을 재조명 하고자 몇몇 후학들이 힘을 모아 설립한 단체입니다. 사업회는 조병화문학관 및 편운문학상 운영을 지원하고 계간 『꿈』을 간행하는 등 한국 시문학 발전을 도모하고 이 시대가 잊어가고 있는 ‘서정성’을 소생시키는 데에도 기여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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