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306호 비는내리는데 -미도파 부근👁️ 조회수: 6,569 views

비는 내리는데
-미도파 부근

진종일 비는 내리는데
비에 막혀 그대로 어둠이 되는 미도파 앞을
비는 내리는데

서울 시민들의 머리 위를
비는 내리는데

비에 젖는 그리운 얼굴들이
서울의 추녀 아래로
비를 멈추는데

진종일을 후줄근히 내 마음은
젖어 내리는데

넓은 유리창으로 층층이 비는 흘러내리는데
아스팔트로 네거리로 빗물이 흘러내리는데

그대로 발들을 멈춘 채
밤은 내리는데

내 마음 속으로 내 마음 흘러내리는 마음
내 마음 밖으로 내 마음 흘러내리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막고 진종일을
비는 내리는데

가난한 방에 가난한 침대 위에
가난한 시인의 애인아
……어두운 창을 닫고
쓸쓸한 인생을 그대로
비는 내리는데

아무런 기쁨도 없이 하는 일 없이
하루를 보내는데
하루가 가고 진종일을
비는 내리는데

비에 막혀 미도파 앞에 발을 멈춘 채
내 마음에
밤은 내리는데모든 시민들이 하루의 직장 일을 마치고
집으로, 거리로, 다방으로, 맥주집으로, 술집으로
분산해 가는 퇴근 시간에 비가 내리고 있다.
추녀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후줄근한 서울 시민들의 서민적 엘레지라 할까,
서민적 생활 무드라 할까
그러한 젖어 흐르는 우리들의 마음을 그려본 것이다.

-『고백-밤이 가면 아침이 온다』, 오상, 1999, pp 25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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