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235호, 먼 꿈을👁️ 조회수: 7,183 views

소년은 어느덧 자라서 청년이 되어
그 먼 꿈을 잡으려 바다를 건넜다.

전쟁이 계속되고 있던 어두운 시대
청년이 된 소년은
무서운 공습 아래서
일본 식민지 조선인 학생을 살아야 했다.

피가 다르고, 땀이 다르고,
영혼이 다르고, 선조가 다른 이민족 속에서
서슬이 시퍼런 감시를 받으며
청년이 된 조선 소년은
한없이 맑은 고독으로 곧은 젊음을 살았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이 나고
청년이 된 조선 소년은 패전국에
이루지 못한 꿈을 남기고
해방이 되었다는 조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조국은 그립던 조국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이데올로기의 패싸움판
청년이 된 꿈 많던 소년은
자기 길을 찾을 길 없어
푸르던 꿈을 던져 버려야만 했다.

바닷가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소라새끼처럼
현실이라는 이 무서운 부조리 속에서
거센 세파에 몰려
모든 유산을 잃고 텅 빈 시 속으로
숨어들어야만 했다.

위안처럼, 구원처럼.

그러니까, 경성사범학교를 완전히 마치고 ‘쓸쓸한 갑충(甲虫)의 길’로 가기 위해서 동경고등사범학교 이과 물리화학과로 진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전쟁 말기에 들어가자, 동경은 자주 B29의 공습을 받게 되고 수업은 늘 공포에 싸여 갔습니다. 나는 이러다가 폭격에 맞아 죽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님을 한번 뵙고, 내 운명에 내 생명은 맡긴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3학년 재학 중 일시 귀국이라는 마음으로 귀국을 했습니다. 그것이 끝끝내 종전이 되어서 나는 그대로 경성사범학교 선생으로 눌러앉게 되었습니다.

실로 그 원대한 꿈은 패전국 일본에 두고 온 셈이 됩니다.
해방 후에도 그 물리화학을 계속 공부하려고 했으나, 연구실도 없고, 실험실도 없고, 나를 이끌어줄 만한 사람도 없고 해서 나는 크게 꿈의 좌절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 꿈의 좌절은 시를 낳게 했습니다.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영혼의 에너지를 나는 시(詩)에서 얻어냈던 것입니다.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자란다, 문학수첩 1995, pp 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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