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조병화
몇 호, 몇 호, 숫자 하나 달아 놓고
모두들 육중한 철문들을 굳게
닫고들 있다
침묵, 침묵, 침묵, 침묵, 침묵, 침묵,
침묵, ……,
(1996. 2. 10. 명륜동 나산빌라 203에서)
조병화, 『아내의 방』
나산빌라에서 하루를 묵고, 그 하루를 묵으면서 시상이 떠올랐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현대인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풍경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겁니다.
이러한 생활들을 하고 있으니, 어찌 이기주의가 발달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사회 불신 풍조가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어찌 고독한 소외현상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다들 딛고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완전히 고립돼서 살아가고 있는 거지요,
누가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서로서로 감시를 당하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현대 문명은 이렇게, 차갑게 차갑게 기계적으로 발달되어 가고 있습니다. 사람도 기계의 한 부품처럼 끼여서. 이것을 참혹하다 한들 무엇 하겠습니까.
이제 인간은 자연인이 아닙니다. 기계 문명의 한 부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연인으로서 자연이 아닙니다. 그 자유스러운 자연을 누릴 수가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후략…)
조병화, 『외로우며 사랑하며』, 가야 미디어, pp. 1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