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생애
조병화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
사랑하기 위해서 시를 쓴다
죽기 위해서 시를 쓴다
때론 쓰리게
때론 아리게
때론 축축히
때론 멍멍히
때론 줄줄이
버리기 위해서 시를 쓴다
빈 자리가 되기 위해 시를 쓴다
혼자 있기 위해서
아름다움의 외로움을
사랑스러움의 쓸쓸함을
깨달음의 허망함을
연습하며
실습하며
비켜나기 위해서 시를 쓴다
놓아 주기 위해서 시를 쓴다
물러나기 위해서 시를 쓴다
삶과 죽음, 그걸 같이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
소유와 포기 그걸 같이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
상봉과 작별, 그걸 같이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
널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
조병화, 제23시집『창안에 창밖에』
이렇게 지금까지 나의 생애를 짤막한 시로 정리해 본 일이 있다. 사실 그랬다. 나는 내가 살기 위해서 시를 쓰고 시를 살아 오는 것이지 문학을 하기 위해서 예술을 하기 위해서 시를 써온 것은 아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나의 작품의 주제는 ‘나’이며, ‘그 인생’이며 ‘그 죽음’인 것이다. 따라서 나의 그 작품의 소재도 ‘나 자신’이며 ‘인생 그것’이며 ‘죽음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나는 문학의 사조를 따지지 않는다. 문학의 주의를 따지지 않는다. 문학의 유파를 따지지 않는다. 그 양식이나 형식을 또한 따지지 않는다. 때문에 나의 작품, 나의 시, 나의 언어는 나를 살리고 있는 생명의 호흡이며, 살기 위해서 고독과 그 존재를 허덕이고 있는 가쁜 숨소리, 바로 그것뿐이다.
조병화, 『왜 사는가』, 자유문학사, p. 1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