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28호 안개로 가는 길 (2010년 1월 12일)👁️ 조회수: 8,146 views

안개로 가는 길
– 경인 하이웨이에서 –

안개로 가는 사람
안개에서 오는 사람
인간의 목소리 잠적한
이 새벽
이 적막
휙휙
곧은 속도로 달리는 생명
창 밖은
마냥 안개다

한마디로 말해서
긴 내 이 인생은 무엇이었던가
지금 말할 수 없는 이 해답
아직 안개로 가는 길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면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던 세상에서
무엇 때문에 나는
이 길로 왔을까

피하며, 피하며
비켜서 온 자리
사방이 내 것이 아닌 자리

빈 소유에 떠서
안개로 가는 길
안개에서 오는 길
휙휙
곧은 속도로 엇갈리는 생명
창 밖은
마냥 안개다.

조병화, 제25시집 『안개로 가는 길』, 일지사, 1981.

실로 인생은 ‘안개’, 인생을 산다는 것은 안개를 산다는 것, 그런 생각으로 나는 항상 그 무엇을 새롭게 더듬어 가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한치 앞도 모르는 짙은 안개의 경인고속도로를 아침마다 차로 질주를 하면서, 나는 내 인생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 시처럼.
이 때가 나의 나이 61세, 회갑의 나이였던가, 인생을 거진 다 살면서도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었으니까, 나에겐 나이가 없는 거지요. 있는 것은 오로지 달성 못하고 있는, 나도 모르는 그 꿈이었습니다.

조병화,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자란다’, 문학수첩,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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