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278호 (『나 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 조회수: 17 views

제95신  자유

국무총리가 갈릴 때마다 거의 국무총리 공관에서 저녁을 초대해 주곤 했습니다만 이번 이홍구(李洪九) 선비 총리께서도 예술원 간부들을 초대해 주셨습니다.
평소에 나는 이홍구 총리를 대학 교수 시절부터 선비, 귀공자, 착한 사람, 이렇게 느껴왔던 겁니다.
맨 처음으로 내가 삼청동 국무총리 댁을 예방, 술대접을 받은 것은 박 대통령 시절 최규하 선배가 국무총리로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저녁, 느닷없이 전화가 걸려 와서 받고 보니 최규하 국무총리였습니다. 술을 마시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내가 술을 좋아하고, 술도 많이 마시는 것을 알고 있는 최 선배라서, 같이 술을 마시자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선배가 국무총리가 되고 보니 대단히 높은 자리라 서먹거리며 “저는 차도 없는데요” 하니까, “시발택시 타고 오면 돼” 하면서 급히 공관으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최규하 선배는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 선배였습니다.
나는 차라도 집에 보내 줄 것으로 알고, “차도 없는데요” 한 것이 역시 공사를 분명히 하는 선배라서 택시를 타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까지 결백하게 살 필요가 있는가, 국무총리쯤 된 사람이, 하면서도 “암, 그렇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넓은 방에서 단둘이서 양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최 선배는 술ㆍ담배가 아주 센 분이었습니다.
“왜? 다른 분은 없습니까?” 했더니, “너는 시인이고, 동창이고, 만만하니까, 자유롭지만 국무총리가 누구하고 술자리를 같이한다는 것은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잘못하면 소문이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다. 생각을 하면서도 참으로 부자유스러운 인생을 사는 것이로구나, 생각하며 나의 이 자유스러운 시인의 인생을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돈은 없어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떳떳이 사는 이 정직한 자유인의 인생.
그럼 또. (1995.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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