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서리가 내린 여의도
살풍경한 풀밭에서
비행기가 뜬다
아침 아홉시
바라크 같은 여의도 비행장 건물 앞에서
쬐끄만 가족들이 손을 흔든다
어머니 혹은
아내 혹은
딸 아들 혹은
애인
모두 호주머니 돈 톡톡 털어 보내는 마음
나는 문득 두꺼비 만화를 생각한다
자욱한 서울 장안 아침 상공엔
삼각산 북한산 봉우리 흐르는 강
하얀 서리 안개에 감겨
가라앉고
눈부신 햇살이 둥근 창에 번쩍인다
우리는 어느 새
황해가 뵈는
우리 서해안 낮은 봉우리 봉우리
남풍에 깎인 돌멩이 봉우리
나무가 없는 산줄기 위를 날고 있다
군산을 지나 한라산 꼭대기
비행기는 남으로
구름 한 점 없는 한국 하늘을 난다
내려다뵈는 다도해 어장 부근
새파란 바다 속속들이 들여다 뵈는 맑은 물 속
섬과 섬
오전 열 시 삼십 분
우리의 조국 남단 한라산을 뒤로 한다
지금 여의도는 서울의 중심부같이 되어 빌딩의 숲이 되고, 많은 인구들이 밀집하고 있는 현대도시로 되어 있지만, 그 때만 해도 한강 유역의 한촌(寒村)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그때가 1957년 12월. 한강의 모래섬, 삼각주, 델타 주위에 포플러 나무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그 포플러 나무들에 둘러싸인 초원에 비행기 활주로가 있었습니다.시골 비행장처럼.
이것이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서울 국제공항이었습니다. 건물들도 가건물들이었습니다. 참으로 초라한 국제공항의 모습으로 나의 머리에 가물가물 남아 있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대만 여행을 떠났던 겁니다. 대만의 반공연맹의 초대로, 주요섭(소설가)씨를 단장으로 해서, 송지영 씨(소설가), 이무영 씨(소설가), 김용호 씨(시인), 조경희 씨(수필가), 전숙희 씨(수필가), 그리고 나, 일행 11명이 방방화문화시찰단(訪華文化視察團)으로 대만, 중화민국을 방문하게 되었던 겁니다. 내가 가장 연소한 시인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