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신 죽음과 사랑의 철학
점점 가을이 가을답게 깊어 가면서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아 가는 느낌이옵니다.
어제는 그러니까 10월 21일 금요일, 안성 내 고향 난실리 편운회관에서 경희대학교 대학원 박사 코스에 있는 학생 여섯 명을 데리고 그들의 원대로 강의를 했습니다.
참으로 고향에서 이렇게 강의를 하다니, 하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하였습니다.
‘고향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고향을 빛낸다’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나의 인생, 걸어온 이야기들을 나의 철학과 나의 문학으로 이야길 했습니다.
실로 나의 인생은 죽음을 생각하는 철학이었고, 그 죽음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노력이었고, 그 노력은 오로지 시간과 꿈과 허무와의 투쟁이었습니다.
그 시간과 꿈과 허무와의 투쟁 속에서 그 많은 시들을 얻어낸 생애였습니다.
죽음은 어머님이 ‘살은 죽으면 썩는다’ 하는 말씀에서 터득하였고, 사랑은 어머님이 내가 동경 고사(東京高師)에 합격을 해서 일본 동경으로 떠날 때 서울역에서 하신 말씀, “나는 네가 입학시험에서 떨어졌으면 했다” 하시며 눈물 글썽글썽 하시던 그 말씀 속에서 터득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어머님은 나에게, 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철학, ‘죽음의 철학과 사랑의 철학’을 가르쳐 주셨던 겁니다.
나는 이 죽음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나에게도 있을 죽음이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지만, 죽을 때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긴장을 한 번도 풀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어떻게 보람 있게 살 것인가, 하는 철학하는 마음으로 줄곧 시간을 일 분 일 초 아끼면서 살아왔던 겁니다.
하면서 인생을 보다 인생답게,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풍부하게, 생명을 보다 생명답게 아름답게, 생애를 보다 생애답게 보다 후회 없이, 이러한 생각과 노력으로 살아온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철학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시 작품 등을 통해서 이야기하면서 한동안 고향에 젖어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실로 가을비는 철학이옵니다. 몸 건강하시길, 그럼 또. (1994.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