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신 가을비는 철학입니다
가을이 짙어 갑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보고 싶어집니다.
보고 싶은들, 어찌 그곳까지 가겠습니까.
혜화동 로터리엔, 매년 이맘때면 그러하듯이 낙엽이 한 잎, 두 잎,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 낙엽이 떨어져 가는 보도 위를 비둘기들은 더욱 영악하게 모이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밤새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가을비를 듣고 있노라니 가을비야말로 일체 존재의 철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시가 생각났습니다.
가을비
가을비는 철학이옵니다.
밤 두 시
그 철학을 듣고 있습니다.
지구의 심장으로 침전하면서.
어제는 서울 정도 600년 기념, ‘범한국인 한민족 문학인 서울 대회’가 북한산 밑 라마다 올림피아 호텔에서 열렸습니다. 이 대회의 고문이기에 개회식에 참석했습니다.
많은 해외 문인들이 참석했습니다. 특히 모스크바에서 리진(Lee Din)씨, 중국에서 김철(북경), 이삼월(하얼빈), 최화국(일본), 김선경(일본), 왕수영(일본), 이계향(뉴욕) 씨 등 이러한 안면 있는 작가, 시인들이 참석했습니다.
인사 겸 축사를 하라고 하길래, “서울 정도 600년 기념, 한국 문인 잔치에 참석하게 된 것을 나의 생애에서 가장 큰 기쁨으로 간직하겠습니다. 대회장 그리고 스태프들 수고가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간단한 축사를 했습니다. 참으로 이 나이(일흔네 살)까지 살아서 서울 정도 600년을 보게 되어 감개가 새롭습니다.
‘나의 문학 작품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참으로 세월은 모든 것을 바꾸어버린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망한 것이지요. 그 변화무쌍함 속에서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1994.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