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신 시인의 고향
어제 양성면 면사무소와 안성군 군청에 들려 왔습니다.
내가 작년부터 군수님에게 (김원규 씨), 그리고 안성 출신 국회의원에게 (이해구 씨) 간청을 한 마을 노인 회관 건립 예산(육천삼백만 원)이 떨어져서 (안성군 군의원회 통과), 그 건립에 필요한 용지(부지, 대지)가 필요하다고 해서, 난실리에서는 용지를 내놓을 사람도 없고, 사들일 돈도 없다고 해서 내 땅을 쓰라고 했습니다.
그 용지 사용승낙서에 필요한 인감증명서를 내주기 위해서 마을 이장과, 우형을 데리고 면으로 군으로 토지 측량소로(안성, 성신 측량 설계 공사, 박재균) 돌고 왔습니다.
백이십 평이 필요하다고 해서, 백이십 평을 사용하라고 승낙해 주었던 겁니다.
나는 이렇게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태어난 내 고향 난실리를 시인의 고향답게 만들 꿈으로 살고 있는 겁니다. ‘고향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고향을 빛낸다’라는 나의 생각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렇게 고향을 위해서도 부지런히 그 고향 사람으로 살고 있는 거지요.
이제 올해 내로 아름다운 마을 노인 회관이 들어설 터이니, 마을 사람들의 집합소가 되어 좀 더 마을 부락을 위해서 정을 붙이고 살아가리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요즘 시골도 도시 아파트 생활을 하는 사람들처럼, 문들을 닫고, 자기네들만 잘살려는 개인주의적인 생활 모습이 늘어 가고들 있다고 합니다.
마을이 아니라, 개인, 개인이지요. 옛날에는 마을이라는 공동 의식이 집단 생활로 아름답게 이어져 내려오던 농촌 마을이 점점 도시화되어 가는 슬픈 개인주의의 생활들로 고독해져 가고 있는 겁니다.
서로 산다, 더불어 산다라는 아름다운 협력 체제가 점점 무너져 가고 있다는 겁니다. 개인, 개인이 문 닫고 사는 고독한 현대인의 생활, 그러한 양상이 순박한 농촌에도 번져 나가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서로가 서로의 외로운 생활을 막기 위해서라도 마을 회관이 즐거운 집단의 놀이터가 되었으면 하는 겁니다. 이런 편지를 써서 미안합니다. (1994.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