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신 방황, 그것은 영혼의 방랑
나는 내가 내 길을 살아오면서 줄곧 쉼 없이 내가 나에게 나를 물으며, 그 해답을 스스로 나에게 하면서 항상 나를 이탈하는 법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면서 어느새 1994년이 되었습니다.
한동안 당신에게 보내는 이 편지가 드물게 된 이유도 이런 곳에 있었습니다.
참으로 오래간만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편지가 부끄러워졌기 때문에 중단을 했던 겁니다.
내 자신에 대한 생존이나, 내 사랑이나, 이러한 인생에 대하여 많은 의심이 생겼기 때문이옵니다.
칠십을 넘는 인생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아직도 청년 시절의 열병 같은 회의와 번민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옵니다. 아직도 어른다운 마음의 평화가 없기 때문이지요.
방황(彷徨), 이것을 영혼의 방랑이라고나 할까, 흔들리는 고독이라고나 할까, 끝없이 배회하는 고독한 꿈이라고나 할까, 자리잡히지 않는 정신(精神)의 고향(故鄕), 그러한 것이 항상 나를 불안하게 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정신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오늘, 1994년 정월(正月) 초하루, 쓸쓸한 나의 작업실에서 먹을 갈고 붓을 들어 ‘무아(無我)’라는 두 자를 썼습니다.
무아의 경지를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었지요. 올해부터는 무아의 경지를 살아가자, 하는 마음이지요. 만사에 흔들리지 않는 무아의 경지, 이 철학으로 마음을 정립(定立)시키고자, 마음을 단단히 먹었던 겁니다.
당신에 대한 사랑도 담담(淡淡)한 무아의 정신으로, 세상에 대한 욕망도 담담한 무아의 정신으로, 나의 꿈에 대한 소망도 담담한 무아의 정신으로, 대인관계(對人關係)에 대한 정(情)의 거리(距離)도 담담한 무아의 상태로,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인간(人間)의 공간(空間)을 살아가자고 생각을 했습니다. (199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