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신 나의 여생의 마지막 기록
그동안 글이 나오지 않아서 고통을 앓고 있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글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지난 8월 이래 실로 글다운 글이 하나도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요 며칠 전, 그러니까 11월 9일부터 14일까지 ‘책의 해 조직위원회’에서 일본에 역사 문학 기행을 할 열여섯 명을 이끌고 갔다 오라고 해서 신세계 여행사(박광호 상무)의 주선으로 갔다 왔습니다. 서울(Seoul) → 교토(Kyoto) → 나고야(Nagoya) → 동경(Tokyo) → 닛코(Nikko) → 동경(Tokyo) → 서울(Seoul). 이 여행에서 다시 ‘편운재에서의 편지’를 무슨 일이 있다 하더라도 이어 가야 하겠다고 (의무적으로) 마음을 먹었던 겁니다. 나의 여생의 마지막 기록처럼.
그동안의 큰 변화가 있었다면 아내의 입원이었습니다. 자궁암 수술, 그리고 폐로 번진 암균하고의 투병, 참혹한 인생의 현상을 처음 보는 나의 비통한 경험이었습니다. 너무나 큰 쇼크라 얼떨떨할 뿐, 그저 비참한 마음이 들 뿐이옵니다. 오늘도 병원(중앙 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갔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모든 것이 운명이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음 가라앉히면서.
지금까지도 매사 빈틈없이 살아오면서, 그 결과는 나의 운명! 이렇게 운명에 의지하면서 살아왔지만, 마지막 당하는 나의 운명이 어떻게 나의 앞에 나타날는지, 긴장하면서 기다리고 있을 뿐이옵니다. 다행히도 때마침 ‘디스크 제작'(자작시 낭독) 출연료가 사백만 원 나와서 입원비에는 곤란을 겪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다 어머님의 뜻이라 생각이 되어 어머님에게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동안 편운재에도 잘 내려가질 못했습니다. 자질구레한 일들이 좀 있었습니다만, 다 잊어버렸습니다. 요즘엔 건망증도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이제부턴 나의 꼬리를 잘 붙들고 나의 기록을 잘 이어 가려 하고 있습니다. (1993.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