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신 사랑하는 그 힘으로
얼결에 무서운 꿈에서 깨었습니다. 그것은 공포였습니다. 실로 생전에 처음 인생 바닥에서 느낀 공포였습니다.
내가 지금 저금이 다 바닥이 나고, 원고 청탁도 없고, 강연을 할 청원도 없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지, 하는 돌연한 공포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이러한 생각이 안 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가는 올라가고, 저금 이자는 하락하고, 나의 저금 액수는 얼마 되지 않고, 물가 상승이 저금을 잡아먹어 들어가면 머지않아 나는 경제적으로 바닥이 날 터이니, 이 나이 들어서 어떻게 한담, 하는 생각이 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경제, 신경제 하면서 우리나라 현실은 굳어 가면서 매사에 경기가 없고, 나라 활기가 없는 것을 실감하면서 나의 내일이 보이는 것 같은 공포감이 드는 겁니다.
그렇다고 아들에게 기대할 만한 경제 환경은 되질 못하고, 더군다나 딸들하곤 멀고,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고독한 생활이 참혹하게 무너져 내리는 생각이 들어, 잠을 이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돈을 우습게 생각하면서, 오히려 천하게까지 생각하면서 살아온 문필가, 예술가의 생애, 교직자들의 생애가 이번 이 신경제 운운하는 새 정부 경제 정책에 여지없이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말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것이 신경과민의 엄살일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매일 매일 살아가는 것이 보이지 않는 공포뿐입니다.
그렇게 많이 오던 원고 청탁도 요즘엔 뜸하고, 강연 신청도 그리 없고, 전화벨 소리가 없는 날이 많아져 갑니다. 이것이 인생의 말로 풍경이겠지요.
너무나 허약한 나를 보여 드렸습니다. 엄살로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먼 당신의 사랑으로 이 공포를 이겨 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그 힘으로. (1993.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