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신 편운회관
참으로 오래간만입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어제, 그러니까 양력 7월 20일, 음력 6월 2일, 어머님 기제사(忌祭祀)가 있어서 편운재로 내려왔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삼십 주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겐 삼십 년이 어제 같기만 합니다.
어머님 묘소 앞 잔디를 말짱히 깎아 드리고 편운회관(片雲會館) 앞 잔디도 다 깎았습니다. 편운회관 앞 잔디는 올해, 3월에 심었는데 이제 뿌리를 확실히 내려서 기계로 깎아도 뿌리가 올라오는 일이 없었습니다. 아주 새파래서 보기가 좋았습니다. 성공적이지요.
이렇게 잔디도 새파랗고, 담쟁이 넝쿨도 살아서 축대를 제법 기어오르고 있으니, 머지않아 내가 꿈꾸던 멋있는 회관의 모습이 드러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관은 물론 겉모양보다는 그 회관 내부에 들어 있는 내용이 더 좋고, 가치가 있어야 하겠지요.
과연 내 이 회관의 내용이 후세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고, 꿈이 될 것인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생각해 보면서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고, 꿈이 되고, 용기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용하기에 따라서는, 잘 이용할 줄 아는 관리인(管理人)이 있어야 하겠지요. 내가 죽으면 정부에서 이 회관은 관리하게 되고 따라서 관리인도 공무원이 되겠지만, 그 관리하는 공무원의 문화적(文化的) 질(質)이 문제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문학(文學)에 취미가 있고, 관심이 있고, 지식이 있는 관리인을 만나게 되길 기원했습니다.
아, 어머님 떠나신 지 삼십 년, 삼십 년을 한결같이 어머님 생각으로 지냈지만, 나는 너무나 오래 이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너무 오래 살고 있는 겁니다. ‘아, 이제 저를 데려가 주세요’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자연은 지금 신록이지만. (1993.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