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77호 (『왜 사는가』)👁️ 조회수: 1,300 views

방황과 구원

독일의 시성(詩聖)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는 실로 나에게 많은 감흥과 교훈을 주었다.
중학교 4학년 때 국어 시간에 들은 선생님의 말씀. “이것은 독일의 시인 괴테의 파우스트의 서시에 나오는 말인데 ‘인간은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방황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면서 청년기에 들어선 우리들에게 큰 감격을 던져 준 일이 있다. 나는 이 말에 크게 흥분을 하고 수업이 끝나자 서점에 가서 󰡔파우스트󰡕(岩波〔이와나미〕문고) 상•하권을 샀다. 그리곤 그날부터 이 󰡔파우스트󰡕를 읽어 내려갔다. 아는 건 아는 대로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읽어 내려가면서 나에게 와 닿는 것엔 줄을 치면서 탐독을 할 정도로 포켓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 실로 󰡔파우스트󰡕는 인생 경험이 늘어 갈수록, 지식이 많아질수록, 사색이 깊고 넓어 갈수록, 인생관이나 철학관이 절실할수록 맛과 뜻, 그 뉘앙스가 더해 가는 무궁무진한 말의 바다와 같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말도 기억난다.
“너는 뭘 그리 꾸물꾸물 생각만 하고 있느냐, 사색하는 놈들은 창밖에 새파란 목초가 있는 것도 모르고 어두컴컴한 방구석에서 시든 목초를 씹고 있는 어리석은 양과 같은 놈들이다. 자, 나가자. 창밖의 저 푸른 목초밭으로.”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를 유인해 나가는 장면의 대화이다. 기억이 좀 흐리지만 대충 이러한 말투이다. 이 말도 내가 두고두고 음미해 본 말이다.
또 이러한 말이 있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인간은 방황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노력한 만큼 구원을 받는 법이다.” 노력하는 자에게 구원이 있다는 이 말도 얼마나 인생다운 말인가. 또한 나를 지금까지 흔들고 있는 말이 있다.
“영원한 여성은 항상 우리를 끄집어 올려 준다.”
이 말은 거대한 이 장편 󰡔파우스트󰡕의 맨 끝에 붙어있는 결론적인 말이지만, 한 마디로 나는 이 말에 끌려 지금도 그 불행한 영혼의 청춘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다. ‘영원한 여성’, 이 말은 나를 지금까지 한자리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불멸의 마력이다.
나는 원래 문학을 전공한 것이 아니다. 자연과학(물리, 화학)을 공부하면서 토막, 토막, 토막나는 짧은 시간들을 이용하기 위해서 시를 읽었던 것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수업과 수업 사이사이 쉬는 10분이라는 토막 시간을 이용하는 데는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시는 짧아서 이러한 10분 사이에도 몇 편의 시를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시를 읽으면서 정신의 영양을 보충하는 것이다. 짧은 말, 글 속에 들어 있는 무수한 뜻, 이미지, 그 상상의 안개 같은 것에도 취하면서 무한한 정신의 에너지를 충전시켜 가는 것이다.
나에게 힘이 되고, 나에게 아름다움이 되고, 나에게 진실이 되고, 나에게 까다로움이 되고, 나에게 새로움이 되고, 나에게 놀라움이 되고, 나에게 그리움이 되고, 나에게 사랑이 되고, 나에게 위안이 되는 말, 그 말이 나에게 있어서는 곧 시였었다.
나는 이렇게 시를 문학이나 예술로서 읽은 것이 아니라, 실로 나를 성장시켜 주는 정신의 비료로서 읽은 것이다. 실로 많은 시를 읽었었다. 억지로 읽은 것이 아니다. 즐거워서 읽었던 것이다. 때문에 한 번 읽으면 머릿속에 쏙쏙 들어박혀서 늘 나를 밝고 맑게 해 주었다.
이렇게 시를 많이 읽은 것이 잠재되어 해방 후 그 사회 혼란 속에서 나는 시를 쓰게 된 것 같다. 시를 배워서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시를 읽은 것이 동기가 되어 그대로 시가 나온 것이다.
때문에 나는 시를 따져 가면서 쓴 것이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나의 고독, 나의 슬픔, 나의 그리움, 나의 아픔, 나의 사랑, 나의 죽음, 나의 소망, 나의 괴로움, 그 고민하는 영혼을 언어로 그렸던 것이다. 지금도 그러하다. 시를 가장 순수한 직관, 직감으로 뽑아내고 있는 것이다.

실로 지금까지 많은 시를 써 왔지만, 이렇게 훅, 쏟아져 나온 시들이 나를 즐겁게 하고 있다. 따져 가면서 쓴 시들은 그 수명이 길지를 못하다. 부끄럽기만 하다. 무얼 하는 체하면서 쓴 시들, 문학을 하는 체하면서 쓴 시들, 시를 아는 체하면서 쓴 시들, 이러한 것들이 더러 나의 시집에 끼어 있지만, 그런 것들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그것들을 읽을 땐 실로 온몸이 오싹할 때가 있다. 왜 그런 시를 썼을까 하고.
대충 이러한 시들은 시대의 유행을 탄 시들이다. 나도 모르게 한몫 끼려던 냄새나는 시들이다. 이러한 시들이 오늘날의 시들을 망쳐 놓고 있는 것이다. 소위 난해하다는 시들이 모두 이러한 시들이다.
시는 좀 더 정직해야 한다. 솔직해야 한다. 진지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와 독자에게 성의가 있어야 한다. 혹자는 시를 독자를 위해서 쓰느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파우스트는 비극 제1부 밤에서 이렇게 말을 시작한다. “아아! 나는 이제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유감스럽게 신학까지도, 온갖 노력을 기울여 샅샅이 연구하였도다. 그 결과 가련한 바보가 된 나는 이제 이렇게 서 있으며, 옛날보다 더 영리해진 것도 없도다! 석사님, 박사님이라는 이름을 들으며, 어언간 십여 년이라는 세월을 올렸다 내렸다 이리저리로 새 학생들의 코를 잡아 끌고 있는데–, 우리는 결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만 알게 되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니 정말 내 가슴이 타는 것 같구나……(중략), 내게는 또 재산도 없고 돈도 없으며, 이 세상의 명예나 영화도 없으니, 개라도 이렇게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으리라!”
이렇게 계속되는 자기 회의에서 시작되는 이 방대한 말의 집대성인 󰡔파우스트󰡕는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인생이며 그 철학이며, 교훈인 것이다.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 깊은 맛을 주는 것이다.

Translate »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