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밀
한 인간에 있어서 그가 지니고 있는 속 깊은 비밀은 그 인간의 인생의 재산이며, 마음의 보석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전 생애는 그 재산과 보물의 가려진 보고(寶庫)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깊은 마음의 비밀이 없는 인생은 빈곤한 인생이며, 얄팍한 인생이며, 가벼운 인생이라 말할 수 있다.
사실 비밀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실로 비밀은 생명의 샘이며, 생각의 수원지라 생각할 때가 많다. 이 비밀이야말로 인간을 키워 주고, 성장함에 있어 굵게 만들어 주고, 살찌게 만들어 주고, 깊게 만들어 주고 스스로 스스로를 살게 해주는 원천인 것이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마음의 비밀,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마음의 이 보석, 세월이 갈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빛나고 반짝이고 생생해지는 이 인생의 보물을, 나는 그러한 것들을 혼자 마시며 살아간다.
혼자 그와 문답을 해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길러간다.
나의 온 몸은 이 아름다운 비밀로 가득찬 보석의 창고이며, 빛에 찬 밀폐된 정원이다.
나는 이러한 곳에서 살고 있다.
독일의 시성(詩聖) 괴테는 회상이 없는 인생은 가난한 인생이며 인간은 노년에 들어서 그 젊은 날들의 노력(행동)만큼의 댓가로서의 그 회상을 거둬들인다고 말했지만, 회상 중의 회상은 그 마음의 비밀이다.
누구에게나 흥겨워 이야기하는 그 회상, 누구에게나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그 회상, 그러한 회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이야기하지 않는, 깊은 마음속에 꼭 박혀져 있는 그 아끼는 마음의 비밀, 흥도 아니고, 자랑도 아니고, 그저 나에게만 소중한 마음의 씨앗, 그 비밀.
그렇다. 이 마음속 깊은 한 자리에 꼭 박혀져 있는 이 마음의 씨앗! 그 무게로 인생을 살아간다.
그만큼 무거운 자리에서 그만큼 가볍지 않은 인생을 살아간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이러한 보석으로 밴 인간들의 그 얼굴들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아까운 것은 그 위대한 인간들이 목숨 다해 죽어서 썩어가는 그 사실이다.
그 마음의 보석들이 그대로 땅속으로 사라져가는 그 모습들이다.
아인슈타인은 아인슈타인만큼의 그 보석을, 헤세는 헤세만큼의 그 보석을, 헤밍웨이는 헤밍웨이만큼의 그 보석을, 포크너는 포크너만큼의 그 보석을…… 마음의 넓은 창고에 밀폐시킨 채 영원히 사라져간 것이다.
실로 영원히.
다시는 만들 수 없는 그 얼굴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 얼굴들. 그리고 그 얼굴들이 지니고 있는 밀폐된 그 비밀들.
장 자크 루소는 어린 시절의 그 잘못의 비밀이 동기가 되어 실로 방대한 그의 참회록(懺悔錄)를 썼다고 하지만, 실로 생각하는 갈대들, 그 천재들에 있어선 이 마음의 비밀은 위대한 창조력, 생산의 원동력으로 변한다.
이렇게 마음에 깊이 맺혀진 비밀은 깊은 상처에서 오는 수가 더 많은 법이다. 즐거운 회상에서가 아니라 깊은 마음의 상처에서 그리고 깊은 그 마음의 어둠에서.
완전 무구한 다이아몬드에서가 아니라 부스러진 다이아몬드에서.
위대한 혼일수록 상처가 많은 법이다. 그리고 위대한 인간일수록 그 깊은 상처를 견디어 내며, 그 상처를 새로운 생명의 창조력으로 돌려 만들어내는 법이다.
견디어 내는 사람만이 산다.
견디어 내는 사람만이 이 인생의 쓰라림, 그 아름다움, 그 생애를 사는 것이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그 상처가 있는 인간을 안다. 그 상처가 수년을 걸러 만들어낸 그 아름다운 인생의 보석을.
그러나 그 보석을 만들기 전에 낙심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 낙심이 스스로뿐만 아니니, 남까지 낙심을 시킬 때가 얼마나 많은가.
마음의 보석이 되기 전에 그저 상처투성이로 상처의 인생을 살아가는 아픈 인생들! 아, 인생은 또한 힘겨운 함정일 수도 있다.
산만한 비밀 속에서, 질서를 잃은 비밀 속에서, 체계화되지 않은 비밀 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비밀 속에서 얼마나 많은 아픔이 흘러갔던가.
이렇게 인생은 비밀을 사는 것이다. 문을 닫고 사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사는 것이다. 생각 속에서 사는 것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일생의 대부분을.
프랑스의 화가 루오는 “인간은 혼자서 이 세상에 나왔다가 혼자서 쓸쓸히 사라져 가는 것”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그의 마지막 말로.
이 혼자 나와서, 혼자 살다, 혼자 사라져가는 이 혼자의 긴 인생 여행, 이 인생 여행의 노자는 혼자 만들어 혼자 깊이 간직해둔 혼자의 그 마음의 비밀이다.
이것 없이는 긴 여행을 혼자 할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은 그 마음의 비밀을 질서화하고, 체계화하고, 완성화 하기까지 ‘쓸쓸한 갑충(甲蟲)(마담 퀴리의 말)’처럼 혼자 긴 인생 여행을 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갈대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