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난실리蘭室里
그러니까 내가 소년시절엔 꼭 이 버스를 이용했던 거다. 버스가 없을 땐 내 고향 난실리에서 40리 촌길(지방도로)을, 그 마차길을 걸어서 약 3시간, 오산까지 나와야만 했다. 오산까지 나와서 이곳에서 장국밥으로 점심을 하고 부산 쪽에서 올라오는 완행열차를 타야만 했다. 서울서 내려갈 땐 이와 반대로 서울역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오산까지 가서, 오산서 간단한 요기를 하고 걸어서 40리길을 타박타박 들어가야만 했다. 다행히도 빈 마차를 만나면 마차 신세를 지기도 했다. 오산서 송전까지는 지방도로여서 근년까지도 도로포장이 안되고 있었지만 골프장이 이 부근에 여러개 생기는 바람에 요즘엔 완전히 송전까지 포장이 되었다.
그러니까 국도 45번은 의정부·성남시를 이어 경기도 평택·팽성까지 내려가는 주요 도로였기 때문에 좀 일찍이 도로포장이 완전히 되었던 거다. 그 완전히 포장된 국도 45번이 나의 고향 난실리 앞을 지나가고 있는 거다. 이곳 마을 앞에 버스정거장을 내가 지어서 ‘꿈’이라는 기를 달아주었다. 꿈을 가지고 살자고,
말의 순서가 좀 이상하게 되었지만 오산을 통과해서 서울을 왕복하던 시절, 그러니까 강릉으로 빠지는 영동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다음과 같은 시로 고향길을 표현한 것이 있다.
자, 그럼
하는 손을 짙은 안개가 잡는다
너는 남으로 천 리
나는 동으로 사십 리
산을 넘는
저수지 마을
삭지 않는 시간, 삭은 산천을 돈다
등은 덴마크의 여인처럼
푸른 눈 긴 다리
안개 속에 초초히
떨어져 서 있고
허허 들판
작별을 하면
말도 무용해진다
어느새 이곳
자, 그럼
넌 남으로 천리
난 동으로 사십 리.
「오산인터체인지」라는 시, 나의 제18시집에 수록되어 있으니까. 1970년경의 작품일 것이다.
오산서 40리, 용인서 30리, 송전저수지 호반에 있는 마을, 용인군과 안성군의 경계선에 있는 마을, 작은 개울을 경계선으로 해서 서쪽은 용인군이고, 동쪽은 안성군, 그러한 곳에 나의 고향 난실리는 있다.
그러니까 나는 안성군에 있는 난실리에서 용인군에 있는 송전공립보통학교를 걸어서 10리, 매일같이 통학을 했던 거다. 1928년 봄 4월에 입학해서, 1929년 봄 3월에 서울로 이사를 할 때까지 일학년을 그렇게 왕복 20리길을 통학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