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인대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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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김요섭·성춘복·김혜숙·이인학·이순신·장익룡·김완순·김경원·김양식·신동춘·유경환·홍윤숙·최원규·김명희·신영철·김정우·김영태·이병석·김후란·박정희·임성숙·황성이·강계순·최화국·김원중·허영자·박현령·김선경·박태진·이충이·오학영·박명용·임성조·서인숙·황금찬·이상인·김현숙·주영하·감태준·차한수·박의상·장석주·김정웅·전규태·양인자·이우재·노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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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회 이전에, 그러니까 제2회 타이베이대회, 그리고 제3회 볼티모어대회에 참석한 시인으로선 김양식(金良植) 시인 신동춘(申東春) 시인·유경환(劉庚煥) 시인 홍윤숙(洪允淑) 시인·최원규(崔元圭) 시인이 있었다. 이 시인들은 이 세계시인대회가 어떠한 성격의 시인대회이며, 그 모습이 어떠한 것인가를 잘 알고 있는 시인이라 하겠다. 굳이 여기서 내가 말할 필요는 없지만 국제PEN클럽처럼 그렇게 질서있는 조직체는 아니었다. 초창기라 해서 그런 점도 있었겠지만, 무슨 국제적 사무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국제적 회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중국의 종정문(鍾鼎文, Tin-wen Chung) 시인이 총지휘자가 되어 연락이 되어가고 있었던 거다. 서울대회의 준비가 되어가고 있는 도중, 이 대회의 창립자의 한 사람인 필리핀의 아마도 유존(Amado Yuzon)씨는 사망하고 해서.
제2회 대회, 제3회 대회에 참석한 여러 나라의 시인들은 진짜 이름난 시인들보다는 시를 쓰는 사람들, 시를 애호하는 사람들, 시의 애독자들 같은 인상이 짙은 시인들이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열리는 제4차 대회에는 진짜 국제적으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시인을 초청하려고 무진히 애를 썼다. 대회의 수준을 높이자는 생각에서.
각 대학에서 외국어·외국문학을 담당하고 있는 교수들을 총동원했다. 그러나 그들 교수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시인들에겐 연구가 깊었지 현재 그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역시인들에겐 정보가 어두웠다. 때문에 좀처럼 좋은 시인들의 추천이 들어오질 않았다. 각 나라에 나가 있는 우리나라 해외공관에도 추천의뢰를 띄웠다. 그러나 그것도 허사였다. 이렇게 외국 현대문학에 어두웠던 시대였다. 요즘엔 워낙 해외에 나가 있는 유학생들도 많아졌고, 해외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교편을 잡는 사람들도 많아져서 해외문단 이야기들이 자주 문학지에 소개되고 있지만,
그 무렵 일본시단은, 시단뿐만 아니라 일본문단은, 문단뿐만 아니라 일본의 소위 인텔리계급들은 한국을 무서운 독재국가로 몰아붙이고 있을 때였다. 김지하(金芝河) 시인의 투옥사건이 온 세계에 크게 번지고 있어서 그 여파가 강하게 파동치고 있었다.
일본 대표들이 없는 서울세계시인대회는 어딘가 이가 빠진 대회가 될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다. 그때 머리에 떠오르던 일본 시인이 있었다. 감바야시 미치오(上林猷夫)라는 시인, 감바야시 시인은 그때 일본현대시인회 회장이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57년 9월에 일본 도쿄에서 열렸던 제 27차 국제 PEN 대회서였다. 그때 그는 이 일본현대시인회의 간사 일을 맡고 있었다. 이 도쿄대회에 한국PEN에선 19명의 대표들이 대거 참석을 했었는데, S. 스펜더(Stephen Spender, 영국 시인, 생존), K. 샤피로(Karl Shapiro, 미국 시인, 사망), A, 샹송(André Chams on, 프랑스 작가, 당시 국제 PEN회장, 사망), 니시와키 준사부로(西脇順三郞, 일본 대표적 시인, 사망), 구사노 심페이(草野心平, 일본 예술원 회원, 생존), 다카하시 신키치(高橋新吉, 일본 대표적 다다이스트 시인, 사망), 다카미 준(高見順, 일본 PEN 사무국장, 사망), 이러한 국제적인 시인들 한 20여명이 모인 점심식사에 한국에선 나를 초대해준 일이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친교를 거듭해가고 있지만, 나는 감바야시 시인을 만나면 아무리 김지하 시인 문제로 적대시하고 있는 한일간의 문인 사이지만 어떻게 잘 될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갈 수도 없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서, 평소 그곳 일본에서 청탁을 받고 써두었던 일본어 시편들이 제법 있어 그걸 소시집으로 묶어 가지고 가기로 했다. 아트지 32면, 한 연으로 500부가 나오는 사륙배판의 소시집, 27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출판은 경희대학교 출판국, 비매품, 제목을 세키료노 호노호(寂蓼の炎)라 했다. 이 경희대학교 출판국은 조영식 총장의 지시로 1960년 내가 만들어서 1972년 내가 문리과대학 학장이 될 때까지 그 국장이라는 보직을 맡고 있던 곳이다.
1978년 겨울방학에 일본 대표를 유치하기 위해서 나는 도쿄로 떠났다. 우선 감바야시 회장을 만나고, 일본현대시인회 이사회에 참석을 하고, 나의 일본어 소시집을 한권씩 기증을 하고, 서울세계시인대회를 설명하고, 되도록이면 많이 참가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거처럼 무서운 나라도 아니고, 숨통이 막힐 정도로 자유가 없는 독재 군인통치의 국가도 아니고, 이렇게 자유스럽게 출입할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수많은 시인들이 아름다운 시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리고 많은 술대접을 그들에게서 받고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