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073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조회수: 3,953 views

최영해崔暎海씨와 그 주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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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주·박인환·이진섭·유호·이해랑·유두연·,·윤용하·한노단·이봉구·김수영·김영주·이순재·
이명은·조경희·이인범·조애실·조영암·박연희·김양수·김성민·장만영·이경성·권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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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씨는 화투를 좋아했다. 그래서 애초 여행을 떠날 때 운전기사에게 듬뿍 여비 수당을 주어놓곤 저녁이면 운전기사하고 화투를 친다. 물론 돈을 거는 화투장이다. 나는 화투도 모르는 병신으로 치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밤을 즐겨 화투를 쳤다. 사장과 그 운전기사, 돈은 물론 사장이 따는 수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그럴 수가 있는가 따지면 이것도 하나의 도박이니까, 따면 갖고, 지면 잃고 하는 거요 하며 담배를 이어 이어 빨곤 했다. 이렇게 최영해씨는 허물없이 기사나, 사원이나, 누구에게나, 친하게 지내던 거대한 서민이었다.
그해는 이렇게 울진으로, 백암으로, 영덕으로, 청송으로, 안동으로, 예천으로, 점촌으로, 문경으로, 수안보로, 진천으로, 안성으로 돌곤 1월 4일, 서울로 들어왔었다.
또 어느 해는, 서울에서 대전으로, 전주로, 진안으로, 남원으로, 곡성으로, 보성으로, 장흥으로, 관산으로, 대덕으로, 신리로, 마양리로, 강진으로, 해남으로, 대흥사로, 영암으로, 나주로, 송정리로, 영광으로, 고창으로, 정읍으로, 내장사로, 유성으로 돌아서 역시 1월 4일, 서울로 들어온 일이 있었다.
이렇게 나는 최영해씨를 따라다니면서 많은 지명도 높은 사람을 만나고, 같이 술도 하면서, 많은 여행을 통해서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기회를 갖곤 했다. 실로 그렇게 좋은 인생공부가 또 있었으리.
최영해씨의 단골 친구는 먼저도 이야기한 거처럼, 홍이섭(국사학, 연 세대 교수), 정비석(소설가), 장만영(시인), 그리고 명동입구에 있는 문예서림(책방)의 주인 김희봉씨였다. 한때 최영해씨는 경향신문사 부사장도 했다. 그러한 고로 하나의 착각을 일으켰다. 세상을 요란하게 했던 정비석씨의 연재소설 󰡔자유부인󰡕이 최영해씨가 부사장으로 있었던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거로 착각을 했었다. 이곳에서 정정한다. 서울신문에 연재했었던 거로, 이걸 지적해준 소설가 박연희(朴淵禧)씨에게 감사를 드린다. 하긴 최영해씨는 󰡔자유부인󰡕이 신문에 연재되고 있을 땐 서울신문사의 이사의 한 사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서울신문 사장은 소설가이며, 예술원 회장이며, 예총(당시엔 문총) 회장이었으며, 모든 문학단체의 장을 계속하시던 월탄 박종화 선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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