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834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어머님이 고향처럼👁️ 조회수: 4,728 views

96 어머님이 고향처럼
Corfu에서, 추석 달을 보며

어머님, 이번 추석 달은
이곳 희랍 코르푸에서 봅니다

그곳 난실리엔 대추도 익었을 텐데
차례를 차려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달에 비쳐오르는 어머님의 큰 얼굴을
이렇게, 먼 곳에서 보고만 있습니다

고향처럼.
절벽에서.

시집 『해가 뜨고 해가 지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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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시인대회가 계속되고 있는 기간이 음력 8월 보름 부근이었던 모양입니다.
회의 장소가 있는 힐튼 호텔 언덕에서 환한 달밤에 젖어 있었더니, 같이 갔던 친구가 “오늘은 음력 보름달입니다”, 하고 옆구리를 툭 쳤습니다. 보름달, 음력 8월 대보름 추석 달, 문득 고향 뒷산에 묻혀 계시는 어머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번번이 이렇게 이맘때면 외국 여행길에 있는 때가 많아서, 차례를 못 차려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죄송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더욱 이국에서 보는 보름달이 유달리 환했는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하늘에 비쳐 있는 달, 바다 위에 비쳐 있는 달, 내 마음에 비쳐 있는 달, 황홀했습니다.
내려다보이는 바다가 희랍의 에게 해라고 생각하니 희랍의 신화 같은 것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더한층 문학적인 감흥을 돋워 주었습니다.
어렸을 때, 어찌 내가 이러한 지구의 외지에까지 올 줄을 알았겠습니까. 참으로 이곳 섬은 지도에서도 잘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외진 곳이었습니다. 옛날 희랍 냄새가 그대로 나는 ‘희랍 중에서 희랍’이라는 느낌이 감돌고 있는 섬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러한 옛날 냄새가 나는 곳이라곤 찾아보아야 찾아볼 수가 없지요. 모두 개조된 옛날, 개조된 자연, 개조된 인간, 개조된 조국,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들곤 합니다.
옛날이 남아 있는 곳이라곤 한 곳도 없는 곳이 대한민국, 부끄러운 우리 조국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오늘날 ‘관광도 외화를 버는 산업’이라는 말들을 하고 있지만, 그 볼 만한 옛날이나 지금이 있어야지요. 그저 콘크리트 냄새만 풍기는 근대, 부산한 먼지 많은 문화이지요.
민족의 혼이 살고 있는 집이나, 자연이나, 유적이 없습니다. 슬픈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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