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꿈
내 손길이 네게 닿으면
넌 움직이는 산맥이 된다
내 입술이 네게 닿으면
넌 가득찬 호수가 된다
호수에 노를 저으며
호심으로
물가로
수초 사이로
구름처럼 내가 가라앉아 돌면
넌 눈을 감은 하늘이 된다
어디선지
노고지리
가물가물
먼 아지랭이
네 눈물이 내게 닿으면
난 무너지는 우주가 된다.
시집 『창안에 창밖에』에서
—————————————————————————–
어느 사람에게나 자기가 찾는 사랑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랑은 동성보다도 이성인 경우가 정상적인 겁니다. 이러한 사랑은 남성의 경우엔 여성이 정상적인 사랑이겠지요. 이러한 사랑을 생각하다보니, 아름답고 순수한 한 여성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성이 꿈으로 가물거리는. 꿈과 여성과, 그 아름다운 정경을 꿈꾸면서 엮어진 순수 이미지의 흐름이 이러한 시로 나타났습니다. 이 시도 제 23시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설명이 없이 이미지가 이미지로 이어져 내리면서 어느 고요한 존재 현상을 연상케 해 주는 그러한 작품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순수한.
시라는 것은 설명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거지요. 읽어서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느낌이 강해야 그 시는 산다고 생각을 합니다. 시는 ‘안다(知)’는 세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느낀다(感)’는 세계라고 생각을 합니다.
‘시는 지성(知性)이다’(“시는 지성의 축제” 중, P. 발레리) 하는 문학사조에 말려들어, 덮어놓고 지성, 지성, 하고 있지만, 우리 나라 사람처럼 지성을 좋아하고 사상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드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감상주의적인 감성을 두둔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는 지성보다는 감성에 더 가까운 세계에 있는, 지성보다 더 폭 넓은 느낌과 암시와 공감의 세계가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 느낌과 암시와 공감이 동시에 진동하면서 일으켜 주는 황홀한 또 하나의 이미지의 세계, 그것이 시가 아닐까요. 나는 지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것이 우리 인간들에게는 더욱더 필요한 시의 세계가 아닌가 하고 늘 생각하곤 합니다.
‘느낌(感)’의 세계, 그것은 ‘알음〈知)’의 세계보다 더 넓고 넓은 지각(知覺)의 세계라고 생각을 해 오고 있습니다(학생시절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