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688호 백스물한번째 서신👁️ 조회수: 4,788 views

오늘로 요란 찬란하던 꽃의 계절 사월도 마감하고 내일이면 오월이옵니다. 오늘 원남동 원불교 법당에서 아내의 사십구제, 그 종제식(終齊式)이 오전 열시 반에 있었습니다.
나는 사십구제라는 말을 들은 일은 있었지만, 그 사십구제 마지막 날이 종제식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습니다. 장중한 영전, 그 자리에서 뉴욕에서 온 외손녀 윤희정이가 마침 나온 나의 마흔일곱 번째 시집 『먼 약속』에서 「그곳」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곳은 찾아갈 수 없는 곳이어서
서로 만날 수 없다 해도
그리 섭섭해 하지 마십시오
그저 서로 마음과 마음에서 만납시다

지금 당신이 있는 그곳은
내가 찾아갈 수 없는 곳이어서
서로 만날 수 없다 해도
그리 서운해 하지 마십시오
그저 서로 마음과 마음에서 만납시다

그곳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이어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 마음
서로 간절하다 하더라도
그리 매정하다 하지 마십시오
그저 마음과 마음에서 만납시다

당신이 있는 그곳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이어서
서로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 해도
몰인정하다고 나무라지 마십시오

아, 그저 마음과 마음에서 만납시다.

그리고 마지막 이별 고사를 막내 영(泳)이 구슬프게 읽어서 많은 사람들을 올렸습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이번 마흔일곱번째 시집 『먼 약속』은 ‘먼저 간 아내 김준(金埈)에게’ 이렇게 헌사가 묻혀있는 시집이옵니다. 그리고 진명여고 시절 지리선생 정갑(鄭甲) 씨가 지어 주셨다는 호가 시영(詩影)이어서, 그것도 기념하기 위해서 이렇게 마지막 이별을 아내하고 했습니다.
꺼림칙한 마음 하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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