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의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686호 백열아홉번째 서신👁️ 조회수: 4,906 views

아내가 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스무 날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일생을 그렇게 다투면서 살아왔지만 막상 먼저 떠나보내고 나니 허전하고, 텅 비어 있는 것 같고, 애석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일생 같이 지낸 것이 고맙기도 하고, 이러한 것이 인생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가 나왔습니다.

이곳, 지구는 이제 틀렸습니다.
인간으로 하여, 사람으로 하여
날로 썩어 가며 더러워져 가며 망가져 가며
흙과 물, 공기는 맥없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이곳, 지구는
다시 올 곳이 못 됩니다.

불쌍한 것은 자연
풍요로운 산모 같은 대지는
병들어 부패하며 단산으로 이어지며
자연은 소리 없이 멸망해 가고 있습니다

자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을 말하고 있는 말이옵니다

이제 이곳 뜨면
이곳, 지구는 다시 올 곳이 못 됩니다.

「내가 지구를 떠나는 날의 인사」

이러한 생각으로 나는 지금 살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 어머님이 주신 생명 다하여 죽으면, 먼 윤회(輪廻)의 길로 떠나겠지만, 이 지구에는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광활무애한 이 우주를 떠도는
생명의 작은 씨앗
이곳을 떠나면 또 어디로 가리

아, 무한궤도의 끝없는 업보의 여정
슬픈 바람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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