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산을 오를수록
조병화
세월의 산을 오를수록
하늘은 마냥 넓어져만 가옵니다
하늘이 마냥 넓어져만 가옵니다
땅은 한없이 멀어져 가옵니다
땅이 한없이 멀어져만 가오면서
길은 가물가물 이어지다, 사라지다,
아주 가려져 가옵니다.
아, 나는 이 이승, 길을 잃은 곳에서
바람이 되어 가옵니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어머님 곁으로 가는.
조병화,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오늘이 1995년 12월 31일, 일요일, 또 한 해가 가는 마지막 날이옵니다.
참으로 1995년, 한 해는 국내적으로 어수선했고,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이 옥살이를 하게 되는 재판을 받는 중이고, 물가는 오르고, 많은 사건들이 잇달아 이어지던 해였습니다.
나 자신으로서는 일흔다섯 살을 넘어가는 높은 세월의 고개, 다음과 같은 시가 나왔습니다. 나는 지금 이러한 심정으로 가는 해를 보내며, 오는 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래도 살아간다는 생각이 늘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추하게 오래 살기보다는 아름다울 때 빨리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기 때문이지요.
사람은 물론 능력이 있을 때까지는 살아야지요.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자기 꿈을 잃지 않고 일을 해야지요.
그러나 이제 능력과 노동이 전과 같지 않아서, 이러한 종말 상념에 사로잡히고 있는 거지요.
(…후략)
조병화,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 둥지, pp. 259-2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