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42호 소라의 초상화 (2010년 4월 20일)👁️ 조회수: 7,637 views

소라의 초상화

조병화

당신네들이나
영악하게 잘 살으시지요
나야 나대로히
나의 생리에 맞는 의상을 찾았답니다.

조병화, 『버리고 싶은 유산』

이 시를 쓰곤 가끔 기웃기웃하던 이웃하고도 완전히 담을 쌓고, 혼자서 혼자에 갇혀서 다가오는 숙명의 목소리를 듣고만 있었습니다. 실로 해방이 되고, 독립이 되었다는 조국에서 나는 이편도, 저편도, 못 되는 완전한 이방인이 되고 말았던 겁이다. 나에겐 처음으로 닥치던 이데올로기며, 민족이며, 정치적 분위기였습니다.
내가 동경고등사범학교에 다닐 때도 나는 자연과학책이나, 문학책이나, 철학책 이외는 책방에서 돌아보지도 않았던 겁니다.
정치학이나, 행정학이나, 경제학이나, 이러한 것들은 학문이 아니라, 그저 잡다한 응용물들이라고 무시해 버렸던 겁니다. 그러했던 것이, 지금 그러한 먼지 속에서 이렇게 시달릴 줄이야,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현실의 공포, 그 위협속에서, 나는 참으로 많은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조병화,『세월은 자란다』, 문학수첩, p.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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