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신 당신을 뜨겁게 사랑합니다
1993년, 또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왔습니다. 새해에도 부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젊은 날엔 새해가 올수록 기뻤고, 새로운 희망도 걸어 보고, 그 희망의 성취도를 계산하면서 반성과 도전, 끊임없이 약동하는 생명감을 느꼈지만, 이 나이(올해 일흔세 살)가 되고선 세월이 가속도로 사라져 가는 허전한 감과 아울러, 한 해 한 해가 속절없이 빨리 지나가버리는 것 같은 허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루와 같이 사라져 가는 세월을 붙들기 위해서 올해부터 당신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실로 시에 매달려 무수한 시를 써왔습니다. 시를 쓰는 것이 내 인생처럼.
시에서 써온 나의 말 중에서 가장 많이 써온 말은 ‘고독’과 ‘사랑’과 ‘그리움’과 ‘허무’였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이 고독은 살아가는 하나의 힘이었으며 ‘사랑’은 살아가는 꿈이며, 구원(救援)이며, 위안이며, 희열이며, 살아 있는 빛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움은 인생이며, 허무는 그 종말이었습니다.
이러하면서 줄곧 ‘인생무상(人生無常)’, 그 무상을 살아왔습니다. 산다는 것이 영원불변(永遠不變)한 것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그러면서 지금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내 마지막 ‘생명의 줄’처럼.
오늘 아침 처음 쓴 붓글씨는 ‘계명 일성 동산천(鷄鳴一聲動山川)’이었습니다.
나는 3월 닭이어서, 그것도 첫새벽(축시) 닭이어서, 어머님이 말씀하시길 “너는 3월 닭이라 부지런히 찾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계명 일성((鷄鳴一聲)처럼 올해 한 해가 될는지,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199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