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45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조회수: 2,817 views

내 고향 난실리蘭室里

그러고부턴 늘 마음이 고향에 가 있었다. 주말이면 거의 고향에서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실천을 해왔다. 정이 들어갔다. 현주소도 고향 집으로 옮겨놓았다. 따라서 세금처리도 평택세무소에서 하기로 되었다. 우편물도 제법 고향집으로 들어오곤 한다. 대문에 달아놓은 우편함을 열 때 우편물이 들어 있으면 어린 시절 개울에 친 발에 물고기가 들어 있는 거 같은 기쁨이 들곤 한다. 언젠가 인도의 남쪽 마드래스라는 곳에서 이곳 편운재로 그림엽서를 보낸 일이 있었다. 이렇게 먼 오지에서도 편지가 그곳 시골까지 전달이 될까, 하고, 그랬더니 뜻밖에도 그 그림엽서가 안전하게 와 있던 것이 아닌가. 중국(중공) 여행에서도 매한가지의 의심과 호기심으로 북경에서, 남경에서, 서안에서, 그림엽서들을 보내보았다. 그런데 그것들이 다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닌가. 중국하곤 아직 정식의 수교가 없는 때의 일이었지만.
이렇게 지구에 주소만 있으면 어디서라도 통신이 되는 거다. 그리고 그 지구는 어디나 주소가 있는 게 아닌가. 아무리 지구의 오지라 해도,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이렇게 지구 어디서나 편지가 날아들어오는 곳에 난실리가 있고, 나의 작은 숙소가 있는 거다.
나는 지금 그 나의 숙소가 있는 고향을 나의 정신의 마당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장소로 생각하면서. 내가 죽어서 묻힐 곳이라 생각하면서.
그동안 멀리 떨어져서 타양살이 하던 정을 이곳 고향에 쏟아놓기 시작한다.
마을 어귀에 장승을 세웠다. 마을 앞길에 버스정거장을 세웠다. 마을 앞들에 작은 운동장을 만들었다. 그 운동장에 농구틀을 세웠다. 비각을 수리 보수했다. 마을길을 냈다. 마을 마이크 설치를 했다. 마을의 청결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꿈’을 마을의 기로 달아놓았다. 마을 학생들에게 공부방에 걸어놓으라고 ‘꿈’ 기를 나누어 주었다. 이러한 고향가꾸기 마음이 나도 모르게 스스로 우러나왔다. 내가 시를 쓰는 거처럼.
그런데 요즘 내 고향도 많이 현대화되었다. 지붕 개량은 이미 박대통령 시대에 다 끝나버렸지만 집집마다 구공탄을 연료로 쓰고 가스를 부엌에서 쓰는 시대로 바뀌어버렸다. 집집마다 이렇게 구공탄을 쓰기 때문에 산에 나무들은 무성해졌지만 마을 마당에 쌓여가는 구공탄 쓰레기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아무 곳에나 버리기 때문에 마을 꼴이 꼴이 아니다. 여기도 구공탄 쓰레기, 저기도 구공탄 쓰레기, 그 구공탄 쓰레기를 어떻게 처치할 길이 없다. 게다가 비닐봉지이니, 깡통 껍데기니, 빈 병이니, 농약 봉지이니, 이러한 것들이 겹쳐서 더럽기 짝이 없다. 더군다나 비나 눈이 내리면 더 더럽게 된다. 이렇게 시골에도 물자들이 많이 들어와서 그 쓰레기들이 말할 수 없이 쌓여져간다. 그렇다고 쓰레기차가 있는 거도 아니고,
집집마다 이렇게 구공탄 쓰는 난방장치·부엌장치, 그리고 냉장고·전화·텔레비전 전기장치, 큰 도시의 변두리 지역처럼 현대화가 급속히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적인 변화과정이라 하겠지만, 옛날의 그 고향의 맛을 잃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이제 우선 내가 해야 할 일은 마을 쓰레기장을 하나 만드는 일이다.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동쓰레기장, 그걸 만들어 놓으면 마을이 깨끗해지리, 마을이 깨끗해지면 마을 사람들의 마음도 깨끗해지리, 마음이 깨끗해지면 고향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들이 생겨나리, 이러한 마음이 생겨나면 자연 우리 고향은 살기 좋은 고향이 되어갈 것이 아닌가.
이 마을엔 아직도 내가 태어난 나의 생가가 있다. 나의 오촌 조카가 살고 있지만 그 집은 이 마을 한가운데에 있다.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난실리 322번지가 그 번지이다. 지금 내가 거주하고 있는 편운재는 산38의 1로 되어 있다.
그런데 지붕을 개량하여 양철지붕으로 했기 때문에 웬지 옛날 맛이 들지 않아 나의 생가 같지가 않다. 그러나 앞마당이나, 사랑채나, 마당의 우물이나, 일각문이나, 대문이나, 내가 아버지에게서 한문을 배우던 바깥채는 다 없어졌다 해도 앞마당이나, 대청마루나, 내가 난 안방이 나, 건넌방 그리고 부엌은 그대로 남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것만 해도 다행한 일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고향에 내려가선 심심하면 한 번쯤 들여다보곤 한다.
하면서 참으로 고마운 생각이 들곤 한다. 내가 태어나서 자라서 소년 시절을 보내던 고향 산천이 그대로 있고, 마을이 그대로 있고, 집들이 그대로 있고, 그것들을 이어가는 고향 사람들이 그대로 있고, 추억 거리가 되는 그것들을 이렇게 인생 노경에 들어서도 밟아볼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좀 변했다 하더라도,
고향에 가고 싶어도 그 고향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문명의 혜택을 받고있는 거다.
외국을 여행할 때마다 가보곤 하는 유명한 시인·소설가·화가·음악가, 그러한 예술가들의 고향,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감흥을 얻었던가. 실로 위대한 인간들은 보잘것없는 고향 산천이라 할지라도 그 고향을 위대한 고향으로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고향은 인물을 낳고, 인물은 위대한 인간이 되어서 그 고향을 빛나는 영원한 고향으로 만든다.
고향, 얼마나 그리운 이름인가. 얼마나 다정한 이름인가. 얼마나 눈물겹게 그 영혼을 같이하는 산천인가. 실로 고향은 그 인간의 모든 존재의 본향인 것이다.
문명으로 황폐해가는 고향 산천, 지금 지구는 어디나 그렇게 사람으로 황폐해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황폐해가는 고향 산천을 오히려 살기 좋은 고향 산천으로 만들어가는 것도 그 인간이다. 문명으로 변화해가는 그 고향 산천을 보다 살기 좋게, 보다 아름답게, 보다. 편리하게, 보다 청결하게 이끌어가고 싶은 꿈, 그 꿈으로 나는 지금 내 고향 그 난실리를 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정신부터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마음부터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애향심부터 그렇게.
죽어서 맑은 산천 그 고향에 묻히기 위해서, 그 어머님 곁에 잠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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