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061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조회수: 3,895 views

조지훈趙芝薰씨와 그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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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직(李漢稷, 1921.7.31.~1976.7.14.)은 조지훈씨의 단골이었다. 일제시대의 󰡔문장󰡕지를 통해서 시단에 데뷔한 것도 같거니와 피난 시절 대구에서 같은 공군 종군작가단 창공구락부(단장 마해송씨)의 창립 멤버이기도 했다. 이한직은 일본 학생들이 다니던 경성중학교를 나오고 일본 도쿄에 있는 사립의 명문 게이오 대학 예과에 입학을 했다. 재학중 학병문제로 학교를 중단하고 해방을 맞이하여 신문사에 원고를 투고하며 살았다. 내가 맨 처음 그를 만난 건 서울신문사 문화부에서였다. 김송(金松, 소설가) 부장을 만나러 갔다가 그곳에서 소개를 받았다. 1949년 내 첫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을 돌리고 있을 때였다. 같은 도쿄 유학생이었기 때문이었는지, 혹은 내가 동경고등사범학교를 다녔다는 것으로서였는지 그는 나를 각별히 친하게 대해주었다. 그런데 술이 들어갈수록 그의 고고한 자존심과 귀족 취미에 나는 피곤해지곤 했다. 그는 확실히 자기집 가계(家系)와 학벌(경성중학교, 게이오 대학)을 유별나게 의식하고 있는 거 같았다. 그것에서 나오는 우월감 같은 거, 그 우월감이 전쟁 때문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좌절감 같은 거, 그러한 것들이 응결해서 터져나오던 심리적 콤플렉스에서 실로 그는 성격파탄자처럼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이고, 고고하고, 우울하고, 고독했다. 나는 그와 자주 술좌석에서 어울렸다. 어느 정도 처지가 비슷했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오만할 아무런 건덕지도 없었고, 고고해야 할 아무런 밑천도 없었고, 거만할 만한 귀족도 아니었다. 그저 좌절과 절망으로 허덕이고 있었던 순결한 생명의 상처진 존재였다고나 할까. 그는 늘 말끔한 양복에, 잘 어울리는 넥타이에, 까만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우선 이렇게 복장부터가 고급이었고, 고전적인 귀족취미였다. 우리네와 같은 서민적인 곳이 하나도 없었다. 술집도 그러했다. 술을 마시면서도 절도있는 말을 했다. 꼬장꼬장 규모있는 말을 썼다. 기하학적인 구도 안에서, 강한 감각 속에서, 술을 마시는 거 같았다. 그렇게 그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복장이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넥타이를 푸는 법도 없었다. 취해 들어갈수록 소리만 높아질 뿐이었다. 이놈, 이놈, 이렇게 양반들이 술을 마실 때처럼, 그러한 풍경으로, 그러나 그도 세상을 떴다. 장면 내각 때 일본 도쿄 주재 한국문화원 책임자(?)로 있었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거주하다. 작고했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었다.
참신했던 감각의 시인, 조숙했던 대망의 시인, 전쟁으로 인하여 단절을 살아야만 했던 시인, 이렇게나 조사 아닌 조사를 남겨둘까.
어느 날이었던가, 추운 겨울밤, 습관처럼, 버릇처럼, 으레하는 거처럼, 본능처럼, 통행금지시간 임박해서 조지훈씨가 대문짝을 차며 “대부!” “대부!” 큰소리로 문을 열라는 것이었다. 조지훈씨의 집은 내가 있는 혜화동 로터리를 돌아 성북동 고개를 넘어서 있었다. 나의 집은 수복 후 줄곧 혜화동 로터리 107번지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지나가는 길목이기도 했다.
통행금지시간, 밤 10시일 때도 있었고, 11시일 때도 있었고, 12시일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15년 전쯤 되는 세월부터 그 불편하던 통행금지 시간도 철폐되었다.
통행금지 시간이 될 무렵이면 술집은 어디서나 적이라도 쳐들어온 것 같은 어수선한 풍경들이었다. 서둘러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명동 거리에서 쏟아져나오는 취객들로 미도파 앞 명동 입구는 사람들의 홍수였다. 마침내 봇물이 터져 넘치는 물 아닌 사람들의 인파들이었다. 그러한 일들을 거의 매일 밤 겪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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