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059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조회수: 3,968 views

김광주金光洲씨와 그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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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주·박인환·이진섭·유호·이해랑·유두연·윤용하·한노단·이봉구·김수영·김영주·이순재·이명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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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한참 뒤 이야기지만 김광주씨는 참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다가 동아일보에 󰡔비호飛虎󰡕를 연재하고부턴 생활이 안정되어갔다. 명동의 술값, ‘반 되만 더, 반 되만 더’ 하던 그 많은 술값들이 거의 김광주 씨의 이름으로 단 외상값들이었다. 이런 곳에서도 그 폭넓은 인생의 포용력을 짐작하리, 󰡔비호󰡕는 신문이 나오기가 무섭게 가두에서 팔리곤 했다. 무서운 인기였다. 어른이고 젊은이고, 안 읽는 사람이 없다시피 대선풍리에 연재가 해를 거듭했다. 거의 종말에 접어들 때 지금의 동화출판공사 임인규(林仁主) 사장이 나에게 접근해왔다. 만나자마자 “조선생, 부탁이 있습니다. 김광주 선생하고 아주 가까우시니 지금 동아일보에 연재중인 󰡔비호󰡕 제가 출판하게 주선해주실 수 없을까요?” 간곡한 부탁이었다. 그날 늘 가는 술집에서 단둘이 만났다. “김선생, 그 󰡔비호󰡕 임인규라는 분이 출판하고 싶다는데요. 집을 사드리겠대요. 지금까지 집도 없잖습니까? 어때요. 집 한 채 마련하시지요.” 이렇게 말을 꺼내자 “그거 곤란해. 그 원고 민중서관에 있거든. 민중서관에서 출판하기로 하고 매달 아이들 용돈을 좀 갖다 쓰고 있는 형편인데.” 의리 같은 걸 이야기했다. “김선생. 비루하게 용돈 구걸하지 마시고, 원고 가지러 갑시다. 원고를 받는 순간 집을 사드린대요.” 강력하게 권유를 했다. 왜냐, 항상 사글세, 아니면 전세방으로 이동하며 살았으니까.
한참 생각을 했다. 고민을 했다.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술이 거나해졌다. 단둘이서 마시는 술이어서 그 속도는 빨랐다. 반 되만 더, 하다가 “그렇습니다. 내일 신문사에서 만납시다.” 나는 나의 일처럼 흥분했다. 집이 한 채 생긴다니 꿈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그건 그렇고 정말 약속대로 집을 사줄까? 의심도 들었다.
다음날 약속 시간에 신문사에서 만났다. 떠나기 전에 한마디를 했다. “실은 요전 아이의 등록금을 이야기하러 민중에 갔더니, 그 등록금의 반도 주질 않았어.” 그것이 결심을 내리게 한 큰 화약이 되었던 거다.
민중서관은 효자동으로 들어서는 옛날 석조전 중앙청 서편에 있었다. 편집실에 들어서서 담당자를 만나더니 “그 󰡔비호󰡕 손댈 곳이 있으니, 좀 내주시오.” 이 한마디로, 그 원고 뭉치는 작가손에 들어왔다. 그 길로 우리는 기다리고 있던 임인규 사장을 만나 내가 약속을 다지면서 원고를 인도했다. 김광주씨는 그렇게 대담한 분이었지만 대단히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았다.
󰡔비호󰡕는 예정대로 새로 시작한 동화출판공사에서 전6권으로 출판이 되고 약속대로 집이 한 채 작가에겐 생겼다. 홍제동에.
나는 그를 축하하기 위해서 서대문 밖에 있던 어느 목장을 그린 유화 한점을 가지고 그 집을 방문했다. 생각보다도 좋은 한옥이었다.
“자, 한잔,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날 밤 나는 실로 흔쾌히 만취가 되어 돌아왔다.
그 후 연거푸 중국 무협지를 동화출판공사에서 출판을 하고, 그것이 또한 잘 팔려서 우리들 주변 사람들도 흐뭇했었다. 그러던 중 어느 해부터였던가 폐가 나빠져서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 입원 생활이 오래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오랜 투병도 소용없이 1973년 12월 17일, 세상을 뜨고 말았다.
아, 이 무상(無常), 얼마나 짧았던 행복이었던가.
나는 소박한 그 장례식에서 다음의 작별시를 읽었다.

김광주金光洲선생 영전에

󰡔석방인󰡕의 작가
󰡔결혼도박󰡕의 작가
󰡔나는 너를 싫어한다󰡕의 작가
그리고 󰡔비호󰡕 󰡔삼국지󰡕의 역자
김광주 선생

의리와 인정의 작가
모리, 부패, 독재, 위선에 항거
권력과 부정
부귀와 영광
일체의 세속에 타협이 없던 작가
약자와 빈자
선량한 인간의 편이었던 작가
김광주 선생

밤의 대통령
조국의 작가
김광주 선생

어둠과 술, 벗을 남기고
선생은 여기 진관사 어귀
찬바람 새드는 기자촌 한구석에서
소리없이 눈을 감았습니다

1973년 12월 17일, 오후 3시 20분
64세의 생애
그 마지막, 하얀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실로 인생 갖가지 별별 꼴 다 있지만
선생은 오로지 곧은 지조
투철한 정신
강한 자아自我
인간, 김광주를 사셨습니다.

실로 위대합니다

그 인내
그 관용
그 포기

오로지 인간
으로

허허
(1973. 12. 21. 조선일보에 게재)

그 후 얼마나 되었을까, 목장을 그린 그 내 그림이 나에게 다시 되돌아왔다. 이젠 그걸 걸어둘 벽이 없다는 전달자의 말이었다. 집이 다시 오므라졌다는 그 뜻을 생각하면서 혼자 눈물을 흘렸다. 실로 인생은 뜬구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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