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941호 (『시의 오솔길을 가며』)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2-12-27 14:22
조회수: 48
 

어느 대화


한 노인과 한 소년이
나란히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한 노인이 한 소년에게
“어디까지 가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소년은 “멀리 갑니다"라고 대답을 하면서
할아버지는 “어디까지 가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다음 고개 너머까지 간다”라고
대답을 하시면서
“네 망태 속엔 무엇이 들어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소년은 “꿈이 들어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하면서
“할아버지 짐 속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젠 아무것도 없단다"라고
대답을 하시면서
“꿈은 무거울 것이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소년은 “네, 아직은 무겁습니다”라고
중얼중얼 대답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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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想노트

이 시는 꿈이 없는 노인과 지금 한참 꿈을 가지고 살고 있는 젊은 소년과의 대화입니다. 이 대화 형식을 빌려서 나의 인생을 회고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젊은 날 많은 꿈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 많은 꿈을 가지고 흥분하면서 살았습니다.
보다 나다웁게, 보다 개성있게, 보다 명예롭게, 보다 영광되게, 보다 멋있게, 보다 후회없이, 보다 충만하게, 보다 풍요롭게, 보다 남는 인생을 살려는 꿈을 가지고 일요일도 없이 살아 온 나의 인생, 이제 72세라는 고령에 와 보니 그 많았던 꿈의 보따리는 비어가고, 그만큼 가벼워가고, 꿈 보따리 속엔 바람만 새어들며 허전하기 짝이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아무런 후회도 없습니다. 젊었을 때 그러니까 내가 소년시절 경성사범학교 어두운 기숙사에서 꿈꾸었던 그 꿈이 거의 이루어졌다고 생각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계여행도 많이 해서 후회가 없고, 교수 생활, 시인 생활을 해서 후회없이 정신생활을 풍부하게 했다고 여겨져 이것에도 실로 후회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그 많은 취미 생활로(그림, 럭비) 보다 인생을 윤택하게 하고.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후회가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도 후회가 없는 생활을 해 왔다고 생각이 되어서 마음이 한결 편안한 지금을 살아가고 있음에 꿈의 보따리는 이제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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