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940호 (『시의 오솔길을 가며』)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2-12-27 14:21
조회수: 151
 
작은 보따리


참으로 작은 보따리를 가지고
이곳까지 잘도 살아왔다

얼마 되지 않는 지식
얼마 되지 않는 지혜
얼마 되지 않는 상식
얼마 되지 않는 경험
얼마 되지 않는 창작
얼마 되지 않는 돈

실로 서투른 판단과 행동을 가지고
용케도 이곳까지 살아왔다.

이제 머지않아 이곳을 떠나려니
아무런 후회도 없다
어쩌면 그렇게도 고마울 수가 있으랴
어쩌면 이렇게도 고마울 수가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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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想노트

나는 소년시절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로는(8세 때 부친사망) 집안이 점차로 기울어져서 특히 서울로 어머님따라 이사를 하곤 가정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아서 경성사범학교로 진학을 했습니다. 교장의 말씀대로, 그 추천으로.
경성사범학교는 1학년은 의무적으로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한 방에 실장(5학년), 부실장(4학년), 그리고 2학년 학생들 4~5명, 1학년 신입생 5~6명이 한 가족 단위였습니다. 기숙사에 침구만 가지고 들어가면 되었습니다. 일본 학생들은 참으로 좋은 침구들을 소유하고 있었고, 우리 조선인 학생들은 실로 일본 학생들에 비하여 초라하기 짝이 없는 침구들이었습니다. 일본 학생들하고, 조선인 학생들하고의 입학 비율은 80:20이었습니다. 나는 그 가난하고 초라한 이부자리 속에 누워 자며, 왜 우리 어머님은 이렇게 가난하며 초라하며 자유가 없는 일본 식민지에 나를 낳아 주셨을까? 이왕 낳아 주실려면 좀 행복하고, 풍요로운 자유국가에 낳아 주시지. 그러나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는 것.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야지. 살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이왕 살려면 보다 많은 인생을 살아야겠다. 그럼 어떻게 해서 보다 많은 인생을 살 것인가? 일생동안 여행을 많이 한다. 몸으로 이 눈에 보이는 지구를 보다 많이 여행을 하고, 책을 보다 많이 읽어서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의 세계를(정신세계, 영혼세계) 보다 많이 여행을 한다. 그러면 이 인생을 보다 많이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생각이 내 인생 지금까지 일관해서 변치 않는 내 인생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참으로 지금까지 많은 지구상의 여행을 했습니다.
후회가 없도록.
그리고 대학교수로 일생을 마쳤으니까, 그런대로 많은 책을 읽고, 문학을 했으니까, 그런대로 많은 상상의 세계(영혼의 세계, 정신의 세계)를 여행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후회 없이.
나는 세계여행을 할 때, 아무리 긴 여행일지라도 항공사에서 주는 비행 가방 하나만 가지고 여행을 했었습니다.
그 작은 가방 속에 차곡차곡 꼭 쓸 것만 넣어 가지고 아주 간편하게 여행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짐을 부칠 필요도 없고, 짐을 찾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도 인생을 긴 여행이라고 볼 때, 되도록 간편한 생활을 해야 인생이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나는 생활을 해 왔습니다. 되도록 소유물은 적게, 그리고 정신생활은 풍요롭게, 이러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 물질생활은 검소하게, 그리고 정신생활은 풍부하게, 여유 있게, 이러한 인생 설계로 나는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깊이 생각을 하면서, 생각에서 시를 뽑아내면서.
실로 이 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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