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942호 (『시의 오솔길을 가며』)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2-12-29 14:03
조회수: 402
 
나의 생애


일본이 제국주의로 판을 칠 때
나는 태어나, 가난했고

한국이 대중주의로 판을 칠 때
나는 방황하며, 슬펐고

세계가 돈주의로 판을 칠 때
나는 고독하며, 죽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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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想노트

나는 1921년 5월 2일에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난실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음력으로는 3월 25일이라고 합니다. 축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닭띠입니다. 나는 8세 때 2월에 아버지를 잃고 4월에 우리 고향에서 약 10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 송전리에 있는 송전공립보통 학교 1학년으로 입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줄곧 걸어서 가는데 10리, 돌아오는데 10리, 꼭 하루에 20리를 걸어서 통학을 했습니다.
개근을 했습니다. 한 반엔 장가를 이미 들어서 아이 아버지가 된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9세가 되던 해 이른 봄 어머님은 나를 대동해서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들 있던 아현동이라고 했습니다. 서대문 밖에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오산(烏山)역에서 기차라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지금도 그 놀랐던 충격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로 올라와서 곧바로 서울에 있는 학교에 편입이 되지 못하고, 일 년을 놀고 그다음 해에 아현동에서 가까운 미동공립보통학교 2학년으로 편입을 했습니다. 이 학교 앞 언덕 위에 프랑스대사관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프랑스 영사관이라 했습니다. 이 프랑스 영사관과 우리학교 사이엔 북으로 가는 철로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지만 경의선이라고 했습니다. 멀리 신의주까지 가는 철도길이라고 했습니다. 신의주를 지나서 압록강을 건너서 안동, 신경, 만주리, 만주국으로 통하는 큰 철로길이라 했습니다.
만주국을 지나서는 러시아국으로, 구라파로 연결되는 멀고 먼 철로 길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한 없이 이 철로길 따라 멀고 먼 나라를 구경하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끝없는 향수에 젖어 언제나 언제나 이 철도길을 북으로 북으로 달리는 기차를 교실 유리창에서 내다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학교 교실 유리창에서 일장기를 흔들라고 했습니다.
기차로 수송되는 많은 군인들도 기차 유리창에서 일장기를 흔들며 응답을 했습니다. 북으로 북으로 가는 군용열차 들이었습니다. 매일같이 북으로 북으로 갔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전쟁이 터진 거라고 했습니다. 만주사변이라고 했습니다.
중국과 싸우는 거라고 했습니다. 중국에서 먼저 싸움을 걸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보통학교 3학년 때부터 줄곧 졸업할 때까지 일장기를 흔들어야 했습니다.
나는 1936년 3월에 이 학교를 1등으로 졸업을 하고 교장선생의 말대로 경성사범학교 보통과로 진학을 했습니다. 대단히 어려운 학교라고 했습니다만 다행히 합격이 되었습니다. 전체 입학생 100명 중에서 80명이 일본 학생이었고, 20명이 조선인 학생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소설가가 된 선우 휘(鮮于輝) 군이 전체 1등으로 입학을 했습니다. 이 학교 졸업할 때 내가 1등을 하고 선우 군은 불령선인으로 몰려 꼴찌로 특별히 교장실에서 졸업장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내가 경성사범학교에 다닐 때 그 만주사변은 일지사변으로 변해 갔었습니다. 중일전쟁이지요. 그것을 일본인들은 일지사변(日支事變)이라고 했습니다. 일본의 대륙침략 전쟁이지요. 일본이 중국을 쳐들어간 겁니다. 성전(聖戰)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많은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철저한 일본군 통치 아래 전체 제국주의 정치 아래서 자유라는 것은 하나 없었습니다. 그저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국민들이었습니다. 학생들도 군복차림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많은 근로 봉사를 했습니다. 전쟁을 완수하기 위해서 모든 국민들은 학생들까지도 그 국가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속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으로 유학을 했습니다. 이것도 그렇게 어렵다는 동경고등사범학교 이과로 진학을 했습니다.
입학을 하고 다닐 무렵 소위 대동아대전쟁(세계 제2차대전쟁)이 터졌습니다. 처음으로 어렵게 어렵게 학생 생활을 했습니다. 학도출병도 있었습니다. 나는 다행히 고등사범학교 이과 학생이라 면제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많은 젊은 학생들이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동경 공습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일본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을 했습니다. 나는 어머님이 보고 싶어서 한번 한국에 나가고 싶었습니다.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어머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3학년이 되고 큰 폭격은 끊이지 않고 계속돼 나는 견디지 못하여 조선으로 나왔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일본 최후의 전투였던 오키나와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습니다. 나가사키에 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습니다. 드디어 일본제국 최후의 날이 왔습니다. 일본이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을 했습니다. 이것으로 나의 꿈 많았던 일본 유학도 끝이 났습니다. 조선은 독립을 했습니다. 독립은 했다 해도 두동강난 독립이었습니다. 이남은 민주주의를 내걸고 미군정으로, 그리고 대한민국으로 진정되어가고 이북은 공산주의를 내걸고 소련 군정으로, 북조선인민공화국으로 진정되어 갔습니다.
이러는 동안에 국내는 대혼란 속에서 정치 싸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였습니다. 서투른 민주주의 정치 먼지 속에서 나는 완전히 패배를 당했습니다. 갈 길이 묘연해졌습니다. 그 많은 대중, 민중 속에서 나는 고독했었습니다. 그 속에서 나는 생존의 등불, 시(詩)를 만나게 되었던 겁니다. 나는 방황하고 슬퍼하면서 많은 운명의 시를 썼습니다.
초라한 고등학교 물리 선생으로 그 월급으로 살아가는 힘없는 벌레는 침전해가고 있었습니다. 꿈이 없이.
그러다가 시의 구원으로 다시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꿈을 되찾아 갔었습니다. 꿈도 뜻밖에 나를 대학이라는 세계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여기까지가 나의 청년기였습니다.
꿈, 좌절, 방황, 고독, 모색, 다시 꿈으로 이어진 나의 역정이었습니다. 위의 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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