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235호, 먼 꿈을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2-02-15 16:55
조회수: 3053
 
소년은 어느덧 자라서 청년이 되어
그 먼 꿈을 잡으려 바다를 건넜다.

전쟁이 계속되고 있던 어두운 시대
청년이 된 소년은
무서운 공습 아래서
일본 식민지 조선인 학생을 살아야 했다.

피가 다르고, 땀이 다르고,
영혼이 다르고, 선조가 다른 이민족 속에서
서슬이 시퍼런 감시를 받으며
청년이 된 조선 소년은
한없이 맑은 고독으로 곧은 젊음을 살았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이 나고
청년이 된 조선 소년은 패전국에
이루지 못한 꿈을 남기고
해방이 되었다는 조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조국은 그립던 조국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이데올로기의 패싸움판
청년이 된 꿈 많던 소년은
자기 길을 찾을 길 없어
푸르던 꿈을 던져 버려야만 했다.

바닷가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소라새끼처럼
현실이라는 이 무서운 부조리 속에서
거센 세파에 몰려
모든 유산을 잃고 텅 빈 시 속으로
숨어들어야만 했다.

위안처럼, 구원처럼.



...
    
  그러니까, 경성사범학교를 완전히 마치고 ‘쓸쓸한 갑충(甲虫)의 길’로 가기 위해서 동경고등사범학교 이과 물리화학과로 진학을 했습니다.
  
...

  그러다가 전쟁 말기에 들어가자, 동경은 자주 B29의 공습을 받게 되고 수업은 늘 공포에 싸여 갔습니다. 나는 이러다가 폭격에 맞아 죽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님을 한번 뵙고, 내 운명에 내 생명은 맡긴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3학년 재학 중 일시 귀국이라는 마음으로 귀국을 했습니다. 그것이 끝끝내 종전이 되어서 나는 그대로 경성사범학교 선생으로 눌러앉게 되었습니다.

...

  실로 그 원대한 꿈은 패전국 일본에 두고 온 셈이 됩니다.
  해방 후에도 그 물리화학을 계속 공부하려고 했으나, 연구실도 없고, 실험실도 없고, 나를 이끌어줄 만한 사람도 없고 해서 나는 크게 꿈의 좌절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 꿈의 좌절은 시를 낳게 했습니다.

...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영혼의 에너지를 나는 시(詩)에서 얻어냈던 것입니다.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자란다, 문학수첩 1995, pp 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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