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57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7 17:48
조회수: 71
 
19 주점

        일체의 수속이 싫어
        그럴 때마다 가슴을 뚫고드는
        우울을 견디지 못해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나는 먼저 아버지가 된 일을
        후회해 본다

        필요 이상의 예절을 지켜야 할
        아무런 죄도 나에겐 없는데
        살아간다는 것이 지극히 우울해진다

        한때 이 거리가
        화려한 화단으로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력서를 쓰기 싫은
        그날이 있어부터
        이 거리의 회화를 나는 잊었다.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그러한 수속조차 이미 나에겐 권태스러워
        우울이 흐린 날처럼 고이면
        눈 내리는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산다는 것이 권태스러운 일이 아니라
        수속을 해야할 내가 있어
        그 많은 우울이 흐린 날처럼 고이면
        글 한 자 꼼짝하기 싫어
        눈 내리는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아버지가 된 그 일이
        마침내 어쩔 수 없는 내 여생과 같이.

                                        시집 『貝殼의 寢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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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방면으로 도망들을 간 사람들이 한때(1950.9.28.) 서울로 다시 수복을 했습니다. 국군들이 유엔군의 힘을 얻어 연합전선을 펴 북으로, 북으로, 38선을 넘어 멀리
압록강까지, 두만강까지 진격을 했던 겁니다. 인천에 상륙을 해서.
  그런데 수복지구에선 도망을 간 사람들을 도강파라 하고, 도망을 못 간 사람들을 비도강파라고 하면서 서로 감정들이 좋지 못했습니다. 말하자면 도망을 못 간
비도강파는 소위 빨갱이, 아니면 빨갱이에게 협조를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협조했든
협조 안 했든 비도강파는 빨갱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살기등등한 분위기 속에서, 인천이라는 좁은 지역에서 촌문인들에게 나는 비도강파로 몰려 한때 고생을 했습니다. 소설 『25시』처럼.
  나는 그 꼴이 보기 싫어 종군문인증을 발급 받아 평양으로 종군을 했습니다. 그 때 우리나라엔 예술인들로 조직되어 있던 문총구국대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평양까지는
군인 트럭을 타고 갔었습니다. 허허 폐허가 된 평양에서 한 두 주일쯤 지났을 무렵
국군과 유엔 연합군이 후퇴를 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나는 그 길로 경성사범학교 동기동창이었던 선우휘(소설가, 당시 정훈대위, 평양분실장)가 마련해 준 군용 트럭을 타고 쏜살같이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던 도중, 그 어마어마한 유엔군의 대규모 후퇴작전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그 야간 풍경을.
  서울로 오자마자 이번엔 소위 비도강파라는 더러운 이름을 벗기 위하여 곧장 가족들과
함께 부산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로부터 어려운 부산 피난살이. 이러한 「주점」과 같은
시가 나에게서도 나올 정도로 부산은 무질서, 부조리, 혼란, 무법천지, 생존을 위한 먼지
같은 도시였습니다.
  이러니까, 소위 사회 참여라는 시가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 없었습니다. 한동안 나도 이러한 사회 참여시를 쓰면서 희망없는 부조리 사회를 견디어 나왔습니다. 그것이 제3시집 『패각(貝殼)의 침실(寢室)』로 1952년 4월, 정음사에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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