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58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7 17:49
조회수: 79
 
20 황혼

        바다로 가는 언덕 위에 앉아
        황혼이 나를 부르고 있습니다

        황혼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환멸할 내 모든 그것을 나도 갖고

        나 홀로 가기 싫어
        저렇게도 찬란한 황혼을
        마주보고 있습니다.

        바다로 가는 언덕 위에 앉아
        오늘도
        황혼이 나를 부르고 있습니다.

                                         시집 『패각의 침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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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피난살이를 하면서 나는 줄곧 자살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인민군이
이곳 부산까지 금방이라도 쳐들어 올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국군들은 대구 낙동강을 경계로 몰려 있었습니다. 언제 낙동강 전선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르는 위태위태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면서 한편 돈이 있는 사람들은 제주도다, 일본이다, 미국이다, 이렇게 바다를 건너 도망가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남는 사람들은 더욱 불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생존의 공포, 그 죽음의 예감이었습니다.
  ‘죽으려면 차라리 잡혀서 죽느니보다 자살하는 것이 낫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민군에 잡혀서 죽느니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이러한 생각으로 매일 매일을
술과 우울로 지냈습니다. 한번도 빨갱이다, 공산당이다, 하는 말을 써본 적이 없더라도
어차피 그들에겐 인텔리요, 문인이니까, 죽일것이 뻔하다,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약을 구했습니다. 서울고등학교 학생 가운데 제약사를 하고 있는 학생이 있어서 손쉽게 약을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페노비탈이라는 약이었습니다. 가장 좋은 수면제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늘 호주머니에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다니니까 마음이 든든해졌습니다. 나는 부산에 가선 하루도 거의 빠짐없이 수필가요, 시인인 김소운 선생과 만나서, 술을 마시고, 문학 이야기를 하고. 인생 상담도
하고 쓸쓸한 생존을 서로 동반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김소운 선생에게 약이 탄로가 나서 반반씩 나누어 갖기로 했습니다. 김 선생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공산당, 하면 사람을 죽이는 당이라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동란 중 그것을 보았으니까. 아마 다른 문인들도 우리와 같이 약을 가지고 다녔을 겁니다.
  이러한 자살 임박한 기분을 이러한 시로 읊었습니다. 황혼! 너무나 빨리 서둘러야 했던 황혼, 참으로 절망적인 체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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