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65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7 17:56
조회수: 60
 

시집 『사랑이 가기 전에』 무렵

  6⸱25 동란이 불안한 예감대로 인민군의 남침으로 하여 일어났습니다.
  나는 그 당시 인천에 거주하면서 서울고등학교로 출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들 피난길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남으로 남으로 대열을 이어 피난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도망갈 아무런 이유도 없기 때문에 그저 인천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철저하게 비정치적인 역사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그저 정치에게나, 역사에게나 감히 항거해 본 일도 없었고, 항거하려는 마음도 없고, 항거하려는 생각도 없는 사람, 지극히 그 피해자로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공산당이 쳐들어와도 나 같은 비정치인을 어쩌려고, 하는 생각이 들어서 도망갈 생각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 공산당을 빨갱이, 빨갱이라고 불렀지만, 나는 한번도 빨갱이라는 단어도 써 본 일이 없기 때문에 빨갱이가 쳐들어와도 나에겐 해롭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일반적인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도 그 귀찮은 피난길에 오르지 않았던 겁니다. 또 한편으로는 공산당 정치라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정치는 아니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겁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 강제, 강압의 통제적 독재 정치에, 견딜 수가 없는 공포로 매일 매일을 살아야 했습니다.
  9⸱28 수복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UN군이 인천에 상륙을 하고, 서울을 탈환하고 우리 국군들이 북진을 시작하게 되었던 겁니다. 낙동강 유역까지 쳐들어갔던 인민군은 후퇴를 거듭하고, 남으로 도망갔던 우리 피난민들은 다시 자기가 살던 고장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현장 속에서 피난을 갔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선 도강파(渡江派), 비도강파(非渡江派)로 편가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도강파는 무조건 우리 남한 자유주의파이며, 비도강파는 무조건 공산당에 협력한 빨갱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비도강파로 사상적으로 몰리는 억울한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겁니다. 밤중에도 몇 번씩 소위 도강파 정보원들이 집으로 쳐들어오곤 하는 겁니다. 그리고 몇 번이고 인천경찰서니, 인천 수상경찰서니, 첩보대니, CIA니, 무슨 정보대니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억울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그저 『25시』의 주인공처럼,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인천 시장이었던 표량문(表良文)이라는, 글을 좋아하는 시장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찾아와선 “조 선생, 우리도 문총구국대 인천지대(文總救國隊 仁川支隊)를 만듭시다.”라고 제언을 해 왔습니다. 그 때만 해도 나는 이미 시집을 두 권이나 낸 중앙문단에 알려진 시인이었기 때문에 인천에는 나만한 문인도 없었습니다.
  나는 이름이 군대 같은 조직 냄새가 났지만, 도강파에 몰려다니는 애매한 존재였기 때문에 그것을 모면하기 위해서, 싫었지만 “그럼 어떻게 하면 됩니까.” 했더니, “우선 조 선생 집에서 몇 명 문인다운 사람을 모아 놓고, 그 발기회를 가집시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인천에서 이름이라도 알고 있는 도강파는 L시인과 U화가밖엔 모르기 때문에 표 시장이 초청하라는 대로 초청을 해서 그 문총구국대 인천지대를 만들고, 표 시장이 지대장이 되고, 그 L과 U가 부지대장이 되고, 내가 소위 총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아니꼬워서 중앙에 가서 평양으로 가는 종군문인증을 하나 내서 평양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국군 트럭에 실려서, 그 흔해 빠진 UN군 잠바와 군모 차림이 아니라, 바바리에다가 베레모로.
  평양에서 한 이 주일 묵고 있는 동안 나는 신문사 사장을 하고 있던 UN군 차림의 박화목(朴和穆) 시인과 그 밑에서 신문 편집을 하고 있었던 박남수(朴南秀) 시인을 만났고, 우연하게도 그곳에 이미 종군하고 있었던 전봉래(全鳳來) 시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어수선한 평양 거리였습니다.
  그러다가 후퇴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수없이 북으로부터 야전차, 탱크, 야포, 트럭들이 먼지를 짙게 둘러쓴 채 평양 거리를 지나 남으로 남으로 후퇴를 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끝없는 퇴각행렬이었습니다.
  나는 그 길로 경성사범학교 동기동창이었던 선우휘(鮮于煇)를 정훈감 분실로 찾아갔습니다. 그는 그 때 문단 신인(소설)이었으며, 분실의 차장으로서 정훈 소령이었습니다.
  그는 한마디로 “너 먼저 떠나라” 하며 UN군의 일대 후퇴작전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나는 그길로 그가 잡아 준 민간인 트럭 꼭대기에 타고 후퇴를 했습니다.
  대동강을 도강하는 수많은 UN군, 그 후퇴의 야경 광경은 화산에서 용암이 흘러내려 오는 인상 그대로였습니다.
  밤이 깊어서 사리원에 도착을 했습니다. 일단 내려서 쉬자는 바람에 내렸더니, 그 트럭은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습니다.
  불안한 생각으로 일행과 한참 기다리고 있었더니, 쌀을 가득 실어 가지고 왔습니다. 후퇴하는 도중에 약탈을 한 거지요. 참으로 악질이었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던 우리 일행들은 하는 수 없이 그 잔뜩 실은 쌀가마 위에 실려서 그 찬바람을 견디며 신막, 개성,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인천으로 가서 그 길로 부산으로 가족을 데리고 피난길에 올랐던 겁니다. 다시는 비도강파(非渡江派)라는 말을 듣기가 싫어서.
  인천에서 탄 L.S.T. 수송선은 인천 앞바다에서 출발을 하여 목포를 돌아, 긴 고생 끝에 부산 부두에 도착을 했습니다. 도착을 한 우리 초라한 가족은 송도(松島)에 있던 이모의 집으로 갔습니다.
  이모부 이남신(李南信) 박사는 우리 축산계의 선구자로서 그 당시 송도에 있었던 송도가축위생연구소 소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1⸱4 후퇴를 하고 송도에서 1953년 가을까지 이곳에서 피난 생활을 했습니다.
  보리밭에 집을 하나 짓고 ‘조개껍질의 집’(Houseof Shell)이라고 이름을 했습니다. 제3시집 『貝殼의 寢室』이 이곳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 무렵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전 경성사범학교) 시절 제자로 윤연(尹淵)이라는 피아니스트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재주 있는 피아니스트였지만 너무나 과민하고, 술을 많이 해서 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으로 아까운 제자였습니다.
  윤연 피아니스트는 서울대학교 대학원 1호 졸업생으로 내가 봉직하고 있었던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피아노 교수로 있었습니다만, 윤연 교수의 지도 교수로 R이라는 여자 교수가 있었습니다. R교수는 윤연 교수를 거의 무료로 연습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윤연 교수를 쭉 길러 낸 피아니스트는 R교수가 되는 겁니다.
  그 R교수가 나를 만났으면 한다는 겁니다. 신문사에 가는 원고 문제로. 나는 윤연 교수의 안내로 R여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R여사는 폐를 앓고 있었습니다. 두 번인가 결혼에 실패하고 혼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후 나는 폐병에 좋다는 파스라는 약을 구해서 전달을 하곤 했습니다.
  그 무렵엔 파스도 대단히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영양이 되는 식품들을 가끔 전달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동정 어린 나의 애정이 크게 그분의 애정을 불살라 놓았던지, 날이 갈수록 순정한 사랑으로 이어져 갔습니다.
  나도 대단히 외롭던 시절이어서 그 뜨거운 애정에 말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말려들면서 언젠가는 헤어질 사랑, 그것을 예감하면서도 그 사랑의 불을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무렵 나는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도 둘을 둔 아버지로서 어떻게 그 사랑이 성공되길 바라겠습니까. 결혼한 사람들의 사랑은 이별로 끝나는 것이 그 운명이 아니겠습니까. 서로 이혼을 한다면 몰라도 아이들이 있는 한 그 이혼이 그리 쉽습니까. 이러한 끝없는 애정과 극렬한 갈등 속에서 참으로 많은 이별의 시들이 나왔습니다.
  나는 이러한 시들을 쓰면서 위로해 주고, 위로도 받으며, 많은 아름다운 영혼의 세계에서 한 5년 방황하다가 끝내는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들이 모여 있는 내 영혼의 숙소(宿所)가 시집 『사랑이 가기 전에』(1955.10. 정음사) 입니다.
  다음과 같이 시작을 해서 다음과 같이 끝을 맺은 것입니다. 실로 까마득한 세월이면서 생생한 세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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