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764호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흐른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6-07 17:55
조회수: 82
 
26 戱女 白雪姬

        白雪姬라고 합니다
        멀리 강계로부터 밀려내린 계집이올시다

        보시다시피 이렇게 타락한 계집이올시다
        그대로 면허가 없는 접대부올시다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椿姬가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카추샤가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또 ⸱⸱⸱⸱⸱⸱⸱ 그게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학교라곤 문전에도 가 보지 못한
        무식한 계집이올시다

        그렇게 뚫어지게 들여다보지 마십시오
        온몸이 이렇게 천한
        이름 그대로 면허가 없는 접대부올시다

        雪아, 雪아, 雪아,
        하얀 雪姬올시다.

                                      시집 『人間孤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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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피난지 부산에서 다시 서울고등학교가 시작이 되자, 철도 연대 정훈일을 집어 치우고 학교로 돌아와서 대수 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일본 동경 유학 시절 자주 찾아 주던 Y라는 사장이 어느 날 학교로 나를 찾아왔었습니다. 다리를 쩔뚝쩔뚝 다리 병신 신세로 나를 찾아왔었습니다. “왜 그렇게 다리가 되었습니까?” 물었더니 해방이 되자마자 권총을 맞았다고 했습니다.
  Y사장은 일제시대에 일본군의 군수물자 공장 사장이었습니다.
  전입학생 문제로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날 밤 대신동 어느 방석집 좋은 술집으로 나는 안내되었습니다. Y사장의 단골집이라고 했습니다.
  술상이 들어오고 여자가 들어왔습니다. 들어오자마자, 우리 손님들을 본 척도 하지 않고 주정을 퍼부었습니다. 이 시처럼.
  이 시의 대부분은 그 여자의 푸념이었습니다. 거의 그대로.
  술에 많이 취하고 있었습니다. 여학생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아마 서울에서 여자대학의 학생으로 있다가, 갑작스레 피난을 하게 되어 갈 곳도 마땅한 곳이 없어서 이렇게 굶주리고 있는 판에 술집으로 풀려 들어온 것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이 여자뿐만 아니라 그 당시 이러한 학생 출신들이 술집에 많았습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고급한 술주정을 신세타령처럼 했겠지요.
  이렇게 술집 여자들은 접대부라는 국가 면허가 있어야 했습니다. 참으로 우스운 나라였습니다. 인권 유린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지요.
  참으로 멋있는 주정이다, 생각을 했지만 얼마 있지 않아 주인이 들어와서 안고 나갔습니다. 나는 다음날 돈을 마련해서 다시 그 집으로 술을 마시러 갔습니다. 마음에 맞는 몇 친구들과.
  그러나 그 설희(雪姬)는 없었습니다. 어디로 갔을까, 애인을 잃은 멍청한 사나이처럼 씁쓸한 술을 마시고, 취하고, 취해서 그 집을 나와 버렸습니다.
  아, 설아, 설아, 하얀 설희(雪姬)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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