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의 시인 조병화문학관입니다
 
 

제목: 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22호 소녀에게(12월 4일)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8-01-22 15:36
조회수: 5213
 

2007년 12월 4일 (제 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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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에 관한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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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은 만민의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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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九十九里 海岸


 

                           구주구리 하마하고 했습니다
                           눈이 끝없이 달리던 하얀 모래사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없이 파도처럼 태평양 검은 물결이었습니다
                           그 물결이 둥둥 떠있던 한 소녀를
                           그곳 바다에서 만났습니다
                           눈알이 까맣게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밤마다 어선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나는 모래사장에서 쉬고 있는
                           그 어선으로 갔었습니다
                           소녀는 하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달빛에 더욱 하얗게 보였습니다
                           서로 웃고만 있었습니다
                           밤마다 밤마다 마을 등불이 멀리 보이는
                           어선으로 갔었습니다.



 


                 

  내가 다니던 동경고등사범학교에선 졸업할 때까지 꼭 수영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1학년 여름에는 수영연수를 꼭 받아야만 했습니다. 동경만 안쪽에 있던 동경고등사범학교 하계 수영 훈련원은 1943년 당시 태평양 전쟁 중이었던 일본사정에 의해 폐쇄되었습니다. 따라서 1학년 학생 중 수영을 못하는 학생을 구별해서 동경만 밖에 있던 보소반도(房總半島)에서 임시로 사원을 빌려서 수영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는 수영을 못하는 학생들에 끼여서 명예롭지 않은(?) 이 훈련에 끼곤 했습니다. 이곳에서 2주일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검푸른 물결이 몰려드는 태평양 연안, 넓고 긴긴 모래사장이었습니다. 일본 이수로 99리라니까, 우리 이수로는 990리가 되는 긴긴 모래사장이라는 곳입니다. 참으로 놀랍고도 광활한 해안 모래사장이었습니다. 어촌은 그런대로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었고 마을 한 가운데 절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절에 우리들 훈련숙소가 임시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태평양 기슭 바다 수영장에서 한 소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소녀는 유달리 눈이 크고 피부가 검었습니다. 나에게 참으로 친절했습니다. 저녁, 그러니까 취침 전 밤에 늘 바닷가 모래사장에 올려다 놓은 배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소녀는 밤엔 늘 하얀 옷을 검은 몸에 입고 나오곤 했습니다. 사람들을 피하며, 피하며 잘도 마을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것이 나에겐 상당히 귀엽고 매력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매일 밤 배에서 만났다가 작별하는 날이 와서 동경으로 다시 떠나왔습니다. 소녀는 내가 타고 떠나는 버스에 수박을 하나 올려놓고 달아났습니다. 소녀는 모하라 여학교 3학년이라고 했습니다. 기숙사로 여러번 편지가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쁘기도 하고 부질없는 사랑놀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마음이 그리 썩 가질 않았습니다.
아마 그 소녀도 지금쯤 그대로 그 파도치는 구주하리가마 근처에서 곱게 그날을 혼자 마음속 깊이 추억하면서 늙어가고 있을 겁니다.

 밋밋한 인생보다는 이러한 추억이라도 있었던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실로 인생은 지나가는 그림자, 추억거리가 있어도 한때 지나가는 그림자, 추억거리가 없어도 한때 지나가는 그림자, 그러나 추억거리가 있는 그림자는 가진 것이 많은 그림자가 아닌가.

 

   
 사단법인 조병화시인기념사업회

 

(사)조병화시인기념사업회는 편운 조병화 시인의 순수 고독, 순수허무의 시세계와 예술철학을 재조명 하고자 몇몇 후학들이 힘을 모아 설립한 단체입니다. 사업회는 조병화문학관 및 편운문학상 운영을 지원하고 계간 『꿈』을 간행하는 등 한국 시문학 발전을 도모하고 이 시대가 잊어가고 있는 '서정성'을 소생시키는 데에도 기여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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